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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18> 해양사학자 강봉룡

장보고 연구 대가, 바다의 개방성에서 韓 미래를 찾다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9-12 19:12:11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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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되기 쉬운 바다의 역사
- 발굴하고 바로잡아 알려온
- 강봉룡 목포대 사학과 교수

- 한·중·일 물류시스템 구축한
- 무역왕 장보고 연구 시작으로
- 개방과 폐쇄의 바다史 고찰

- 해상교통 거점·징검다리로서
- 서남해 수많은 섬들에 주목
- 섬의 날 제정에 앞정서기도

- 설화·민속으로 영역 넓히는 중

바다의 역사는 지워지기 일쑤였다. 거품으로 사라지는 파도나 항적(航跡)처럼 바다를 누비던 해양 영웅의 행적을 잊어버리곤 했다. 그런 망각의 역사와 싸우는 사람이 해양사 연구자다.

■완도에서 강제 이주된 사민(徙民)의 후손

해양사학자 강봉룡 교수가 2019년 ㈔‘한국 섬 재단’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 섬 재단 제공
강봉룡(62) 교수는 1995년 목포대 사학과에 부임해 인근 완도를 둘러보다 묘한 기시감에 빠졌다. 그곳은 828년 장보고가 청해진을 건설했던 섬으로, 그가 죽고 난 851년 이곳 주민은 전북 벽골군(현 김제시)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그로부터 1100년이 지나 다시 완도로 돌아온 사민(徙民)의 후예가 어쩌면 자신일 것만 같았다. 과연 강봉룡은 1960년 강정호와 곽옥희의 8남매 중 넷째로 김제시 만경면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고교 교사인 부친을 따라 완도 옆 해남으로 이주했다 가 전주를 거쳐 서울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목포로 왔던 것이다.

서울대 사범대 인문계열에 입학한 강봉룡이 역사교육 전공을 택한 것은 1학년 내내 시위 현장에서 귀에 젖은 ‘역사가 나를 부른다’는 구호에 이끌려서였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한국 고대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목포에서 장보고의 유적을 접하니 이젠 자신이 역사를 부를 차례였다. 실제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의 일원으로 서남해 섬을 답사해보니 고립공간으로만 여겼던 섬에 대규모 고분과 성곽이 남아 있었고 토기 조각도 발견되었다.

해양사를 재조명해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강 교수의 연구 영역은 급격하게 한국사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그는 9세기 말 서남해에서 견훤, 왕건과 겨룬 발자취를 더듬어본 능창에게서 장보고의 그림자를 보았다. 13세기 중엽 몽골 침략군과 해전을 벌인 고려인이 정국의 흐름을 바꾼 사실도 밝혀냈다. 그와 판이하게 조선 시대에는 바다로의 진출을 막은 해금(海禁) 정책으로 해양인이 멸시당했음을 고찰해냈다.

■장보고 흔적 찾아 中·日로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설치했던 사적 제308호 완도 유적지. 완도군 제공
그는 본격적인 장보고 연구에 착수했다. 때마침 1999년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고 공영방송이 드라마 ‘해신’, ‘불멸의 이순신’을 방영하면서 해양 영웅에 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강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드라마의 허구를 보완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다. 2004년 그가 ‘해상왕 장보고의 진실’이란 부제로 펴낸 책 ‘장보고’는 세인의 관심과 더불어 그에게 ‘강보고’란 별명을 안겨주었다. 이듬해 내놓은 ‘바다에 새겨진 한국사’ 역시 “한국사를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는 학계의 호평과 함께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되었다.

장보고를 닮은 ‘강보고’ 답게 강 교수의 연구 활동은 종횡무진이었다. 해양사 연구는 범위가 넓은 데 비해 자료가 태부족이었다. 문헌과 함께 고고학 자료, 설화에서 사료를 찾기 위해 그는 청해진 유적지와 주변 섬을 끝없이 맴돌았다. 특히 해남군 화원면과 강진군 대구면에서 9세기 무렵 도자기를 생산했을 가능성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 중국 산동성 석도진항의 적산법화원과 일본 후쿠오카현의 다자이후(太宰府), 교토부의 엔랴쿠지(延曆寺)를 일일이 답사했다. 방문교수로 호주 그리피스대에 머물면서는 호주대륙을 발견한 제임스 쿡 연구로 “바다가 세계를 이었으니 해양사가 곧 세계사”임을 통찰하면서 ‘제임스 캉’이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한·중·일 물류시스템 갖춰

김문경 교수 김성훈 교수 등 선학의 연구에 이어 강 교수가 밝혀낸 장보고 일대기는 장엄했다. 서남해의 어느 섬에서 태어나 당(唐)에 건너가 무공을 떨친 장보고는 828년 신라로 돌아와 동아시아 무역항로를 장악했다. 병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직제에도 없던 ‘대사’란 호칭으로 불린 그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을 잇는 물류시스템을 구축한 항로는 서남아시아에 이르는 ‘남해로’와 이어져 있었다. 장보고의 후원으로 당에 유학한 일본 승려 엔닌은 그를 ‘재신(財神)’이라 추앙했고 당의 시인 두보는 “인의지심(仁義之心)과 명견(明見)을 가진 인물”로 찬양했다. 1955년 미국 하버드대 라이샤워 교수는 그에게 ‘해상 상업제국의 무역왕’이란 칭호를 헌정했다.

■개방·폐쇄 키워드 한국해양사 분석

2022년 목포해양대 실습선 ‘세계로호’를 타고 독도 답사에 나선 강봉룡 교수. 목포해양대 제공
장보고 연구를 시작으로 강봉룡 교수는 ‘개방’과 ‘폐쇄’를 키워드로 한국해양사의 굴절을 짚어냈다. 삼국 시대까지를 태동기, 통일신라부터 고려 시대까지를 융성기, 조선 시대를 쇠퇴기,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는 부흥기로 구분했다. 그 각각의 시대에 따라 해양 영웅도 역할이 달라졌다. “장보고와 이순신 모두 한국해양사의 영웅이지만 해양 개방 시대를 누린 장보고는 해양 진출을 이룩했고 폐쇄시대의 이순신은 해양 방어 업적을 쌓았다. 이순신이 해양을 지켜 나라를 구했지만 조선시대 해금 정책의 잔재는 지금도 해양 강국으로의 성장에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강 교수는 황상석 장보고한상명예전당 관장과 더불어 “해양이 개방된 21세기 글로벌시대에는 한상(韓商)의 원조 격인 장보고를 사표로 세계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섬의 날’ 제정에 역할…지역특화 연구·해외네트워크 구축

강봉룡 교수의 바다 사랑은 확고했다. 함께 부임했던 교수들이 줄줄이 타지의 대학으로 떠나가도 그는 꿋꿋이 바다 곁에서 목포를 지켰다. 지역에서도 주제만 특화하면 얼마든지 세계적 수준에 이를 수 있음을 연구 성과로 입증해냈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와 인문한국사업단을 이끌며 2009년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를 결성해 지금까지 무려 2000여 편의 논문 발표를 유도했다. 2013년에는 서로가 생소한 한·중·일·대만 해양문화학자를 소개하다 내친김에 연구자네트워크 ‘동아시아 도서해양문화포럼’을 구축했다. 그러자 저마다 먼저 학술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나섰고, 최근에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연구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바다와 더불어 강 교수는 섬에 주목했다. 그가 보기에 한반도 서남해의 섬이야말로 세계로 나아가는 해상교통 거점이자 징검다리였다. 역사적으로도 해금과 공도(空島)정책으로 섬이 무시되던 시대에는 지역과 나라가 쇠퇴했고 그 반대일 때는 흥성했다. 2016년 그가 지인들과 뜻을 모아 내놓은 ‘섬의 날’ 제안은 지역의 응원 아래 국민공모와 국회 공청회를 거쳐 마침내 2018년 세계 최초로 ‘섬의 날’ 제정을 이루어냈다. 이를 “인생에서 가장 기쁜 사건”이라 부르는 강 교수는 “섬의 청정함과 문화 다양성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보존, 활용해 청정산업과 문화콘텐츠산업으로 생태 경제 문화복지를 구현하자”고 말했다.

기왕에 “해양사의 대중화와 지방사를 통한 학문의 현지화 세계화를 이룩했다”는 인정을 받아온 강 교수였다. 그는 지역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목포를 중심으로 한 서남해의 소명과 역할을 강조해왔다. 그와 함께 ‘목포포럼’에서 활동해온 한원희 목포해양대 총장은 “21세기의 한국은 장보고 정신으로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서남해는 동북아의 중심”이라는 장용기 목포MBC 전 국장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같은 맥락에서 강 교수는 목포를 ‘섬의 수도’, 부산을 ‘해양수도’로 삼은 국가균형발전 방안도 제안했다. 그간의 성과로 강봉룡 교수는 2010년 장보고 대상 대통령상에 이어 2021년에는 섬 발전 기여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무엇보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완도군 명예군민’으로 위촉됐다.

요즘 강 교수는 새벽에 깨어나 설화와 민속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리스신화를 읽고 유적을 발굴한 슐리만처럼 그가 망각의 바다를 건너와 펼쳐놓을 해양사의 새 아침을 기대해본다.


▶도움 말씀 주신 분 = 한원희 목포해양대 총장, 조세현 부경대 교수, 권덕영 부산외국어대 교수, 장용기 목포MBC 전 국장, 황상석 장보고한상명예전당 관장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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