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영업회의. 지난달 매출이 줄었다. 대표가 말한다. “가격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 질문 같지만 회의실은 이미 방향을 잡는다. 영업팀장은 경쟁사 가격을 조사한다. 마케팅팀은 할인 행사를 준비한다. 누군가 AI에 입력한다. ‘매출 회복을 위한 가격 인하 전략을 세워줘.’ 잠시 뒤 할인 시나리오와 광고 문구가 화면에 펼쳐진다. 회의가 끝날 무렵에는 담당자까지 정해진다.
그런데 이 회의에는 빠진 게 하나 있다. 가격 문제가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회의가 시작될 때는 추측이었던 가격 문제가 끝날 때는 추진할 전략이 됐다. 누구도 고객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 왜 구매를 멈췄는지, 왜 다시 찾지 않는지. 품질 불만이나 불친절한 응대가 원인이라면 할인은 해결책이 아니다. 손실을 더 키울 수도 있다. AI가 틀린 말을 했을까? 아니다. 가격 인하를 전제로 꽤 그럴듯한 방안을 만들어 냈을 거다. 문제는 그 전제를 누가 정했느냐다. 리더가 던진 추측을 직원이 과제로 받아 적고, AI가 그 과제를 계획으로 완성했다. 아무런 검증 한번 거치지 않은 가설이 결론으로 승진한 셈이다. 그것도 초고속으로.
원래 조직에는 이런 일이 많았다. 경험 많은 리더가 한마디 하면 그 말은 업무 지시가 된다. 직원은 리더의 생각이 맞는지 따지기보다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한다. 잘못된 질문을 바로잡는 일은 용기가 필요해서다.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일은 부담이 덜해서다. AI가 이런 관행을 만든 주범이냐고? 그건 아니다. 다만 속도를 높인다. 답이 빨리 나오니 질문이 옳은지 확인하기도 전에 실행으로 넘어간다.
그렇다고 리더의 경험을 경계 대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현장을 오래 겪은 사람에게는 초보자가 보지 못하는 징후가 보인다. 경험은 판단의 소중한 출발점이다. 다만 출발점이 도착점으로 인식되는 순간이 문제다. ‘예전에도 가격을 낮춰 회복했어’라는 말 뒤에 ‘이번에도 같은 이유일까’라는 질문이 이어져야 한다. 경험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단 얘기다.
며칠 뒤, 후속 회의에서 고객 응대 담당자가 손을 든다. “가격보다 품질을 문제 삼는 고객도 있습니다.” 대표가 “일단 할인안부터 만들어봅시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담당자는 손을 내리고, 팀장은 할인안의 완성도를 높인다. 다음 회의에는 더 보기 좋은 자료가 올라온다. 고객의 말은 묻혔다. 확인되지 않은 판단을 확정된 지시로 만든 리더의 한마디 때문이다.
이런 조직에서 ‘자유롭게 반대하라’는 구호는 의미가 없다. 반론을 듣는 것과 결정에 반영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반론이 나와도 계획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직원들은 금세 배운다. 말을 보태느니 맡은 일을 빨리 끝내는 편이 낫다는 것을. 조직이 잃는 건 아이디어 몇 개가 아니다. 잘못된 판단을 스스로 바로잡는 자정 능력이다.
더 곤란한 것은 계획이 정교할수록 되돌리기 어려워진다는 거다. AI가 만든 분석에 사람이 표를 다듬고, 부서가 일정을 맞추고, 대표가 결재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격이 원인이 아니었다고? 인정하면 공들인 일을 접어야 한다. 그 말을 꺼내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답을 만드는 수고를 AI가 줄인 자리에 생각을 바꾸는 수고가 그대로 남는다. 때로는 더 커진다.
회의를 주재하는 리더의 질문은 그래서 바뀌어야 한다. “가격을 얼마나 내릴까?”가 아니라 “고객이 떠난 이유를 무엇으로 확인했나?” 가격 인하안을 만들기 전에 고객의 불만과 이탈 이유부터 살펴야 한다.
더 중요한 장치는 결론 옆에 붙일 한 줄이다. ‘가격이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근거가 확인되면 할인 계획을 보류하고 원인부터 다시 살핀다.’ 이 조건을 회의에서 합의해두면 반대 증거를 가져온 직원은 대표의 체면을 깎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이 함께 정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 물론 모든 결정을 끝없이 의심할 수는 없다.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일수록 이런 확인이 필요하다.
회의실 화면에는 이미 매끄러운 가격 인하 계획안이 떠 있다. 그 앞에 고객 상담 기록을 정리한 메모 한 장이 놓인다. 여러 고객이 지적한 문제는 가격보다 품질에 가깝다. 이때 대표가 할 말은 무엇일까. “일단 진행합시다”인가, “그럼 처음부터 다시 봅시다”인가. AI 시대 리더십의 차이가 갈리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