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와 50대, 즉 우리 사회의 중추를 이루는 중년층의 사망 원인 1위는 간암이다. 간암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만성 B형 간염’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 억제제라는 훌륭한 무기가 존재하지만, 국내 만성 B형 간염 환자의 진단율은 85%에 달하는 반면 실제 치료율은 22%에 머물렀다. 나머지 환자는 치료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간경변과 간암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비극적 사각지대를 허물기 위해 최근 대한간학회는 ‘2026 만성 B형 간염 진료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이번 개정은 단순히 임상 지침의 수정을 넘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B형 간염 치료의 패러다임을 뿌리째 바꾸는 일대 전환점이다. 그동안 B형 간염 치료의 절대적인 기준 중 하나는 ‘간 수치(ALT)’였다. 혈액 검사에서 간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으면, 바이러스 수치가 아무리 높아도 치료를 시작하지 않고 ‘보유자’ 혹은 ‘추적 관찰 대상’으로 분류했다. 국내 간암 환자 중 처음 암을 진단받을 당시 그전부터 B형 간염약을 복용하던 환자는 36%에 불과했고 나머지 64%는 까다로운 보험 기준 탓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가 간암에 걸린 것이다. 특히 국내 연구진이 주도한 ‘ATTENTION 연구’ 등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바이러스 수치가 애매하게 높은 이른바 ‘중등도 바이러스혈증’ 구간의 환자가 오히려 고 바이러스혈증 환자보다 간암 발생 위험이 최고 6∼8배나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간 수치가 정상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미루는 사이, 환자의 간은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의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이 ‘치료의 회색지대(Gray Zone)’를 없애고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다. 이번 2026년 가이드라인이 직전 지침과 달라진 핵심은 치료의 기준을 ‘간 수치’ 중심에서 오직 ‘바이러스 역가(HBV DNA 수치)’ 중심으로 전면 재편했다는 점이다. 첫째, 복잡하고 모호했던 자연 경과 분류 체계를 깨끗이 지웠다. 과거에는 HBeAg(e항원) 양성 여부, HBV DNA 수치, 간 수치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환자를 면역 관용기, 면역 활동기 등 5단계의 면역학적 상태로 분류했다. 이렇다 보니 어느 단계에도 속하지 않는 사각지대 환자가 30∼40%에 달했다. 새 지침은 이를 과감히 탈피하여 오직 객관적인 바이러스 수치(HBV DNA)만을 기준으로 고 바이러스혈증, 중등도 바이러스혈증, 저 바이러스혈증 등의 단계로 명쾌하게 재분류했다. 둘째, 가장 위험한 ‘중등도 바이러스혈증’ 환자들에 대해 간 수치와 무관하게 즉시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시작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바이러스가 활동하며 간을 갉아 먹고 있다면, 혈액 검사상 간 수치가 정상일지라도 곧바로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 간암 발생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의도이다.
대한간학회의 분석에 의하면 이번 가이드라인에 맞춰 치료 대상을 대폭 확대하면 국내 B형 간염 치료율은 기존 22%에서 50%까지 배 이상 상향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사회적 비용과 효과로 환산하면, 오는 2035년까지 4만 3300건의 간암 발생을 막고 3만 7000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새로 개정된 가이드라인이 임상 현장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려면, 건강보험 급여 기준의 신속한 확대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좋은 지침이 있어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치료율 향상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항바이러스제 한 알을 제때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간암 발생률을 50∼60% 이상 낮출 수 있다. 한 가정의 기둥인 40·50 세대가 허망하게 간암으로 무너지는 비극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요양급여 인정 기준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경제적인 국가 간암 예방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