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부끄러움을 알았더라면 우린 지금 달라졌을까. 이라크전 파병으로, 전쟁과 상관없는 꽃다운 부산 청년을 참혹하게 떠나보낸 대한민국 대통령. 당시 그가 파병을 결정한 건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긴장 완화를 둘러싸고 미국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어서였다. 3년 가까이 흐른 2006년 12월. 그가 작심 발언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수위가 매우 높았다. 미군이 가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두고 전직 국방부 장관 등 군 원로들이 “아직 대한민국 국방력으로 북한에 맞서기 어렵다”며 반대하던 때다. 대통령은 감정의 핏대를 세웠다.
전작권은 상징적 화두일 뿐. 한미 관계가 굴욕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미국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 형님, 형님 ‘빽’만 믿겠습니다. 이게 자주 국가 국민의 안보의식일 수 있습니까.” 격정은 이어졌다. “대한민국 군대, 지금까지 뭐 했나 이거예요.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직무 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비단 국방만을 말한 건 아니었다. 경제든 외교든 대등한 협상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경제적인 일이나 또 그밖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미국이 호주머니에 손 넣고 ‘그러면 우리 군대 뺍니다’ 이렇게 나올 때, 이 나라 대통령이 미국하고 당당하게 ‘그러지 마십쇼’라든지 ‘예, 빼십쇼’라든지 할 수 있어야 말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20년 세월이 지났다. 우린 지금 미국에 맞서, 틈날 때마다 주한미군 병력이 4만5000명(실제 2만8500명)이라고 부풀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그러지 마십쇼”라고 대응할 힘을 가졌을까. 미국의 당당한 협상 파트너가 됐을까.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발발한 전쟁이 반년 넘게 계속된다.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최근 홍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으로까지 확전돼, 중동 석유를 나르던 바다가 완전히 막혔다. 국제 유가는 대책 없이 치솟는다. 피해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 국가가 본다. 물류가 흐르던 바다를 전쟁으로 틀어막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파병하지 않은 한국을 콕 집어 탓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원래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20%가량이 오가던 곳. 미국의 공격은 외려 ‘호르무즈 봉쇄’라는, 핵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를 이란에 쥐여준 꼴이 됐다. 이란은 이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호르무즈 수혜국이 한국인데, 미국이 ‘4만5000명 주한미군’으로 한국을 보호해주는데 왜 파병하지 않느냐고 으른다.
대북 관계를 주도하는 것 역시 한국이 아니라 미국임을 과시하며 압박 강도를 높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을 협의 없이 기습 축소하고, 한국 대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칭송’하며 북미 대화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한국의 대통령에게 이란 비핵화에 동참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으나, ‘사양하겠다(No thanks)’고 답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중 압박이다. ‘우리의 문제’에 패싱당한 한국은 말 한마디 못 했다. 그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 “호르무즈 기여 방안을 검토한다”고도 했다. ‘기여 방안’으로 에둘렀지만 ‘파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에야 기자회견을 열어 “전쟁 개입 파병은 없다”고 뒤늦게 밝히긴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외신이 이에 반응하자,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한 건 아니다”며 우왕좌왕했다. 국민 보기에 썩 좋지 않다.
따져보자. 정부가 검토하는 호르무즈 파병은 2003년 이라크 파병과 결이 다르다. 명분은 떨어지고 위험은 크다. 미국의 요구는 외교적 관례·상식을 무시한 공개 압박이다. 여기에다 이번 전쟁은 이라크전과 달리 자국 의회에서조차 승인받지 못했다. 영국 프랑스 등 주요 동맹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선뜻 응하지 않는다. 당연히 다국적군이 결성된 것도 없다.
결국, 아직도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놓고 미국 눈치를 봐야 하는, 동맹이자 세계 최강대국의 심기를 건들 수 없는 현실이 상황을 또 이렇게 만들었다. 한미는 지난 16~18일 부산에서 통합국방협의회, 18일 미국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열었다. 호르무즈 파병 신호가 점점 가까워진다.
파병을 ‘국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반대하는 목소리를 ‘복잡한 국제 정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쉽게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태가 반복된다면 우린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너무 취약한 나라가 된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20년 후에도 ‘미국 바짓가랑이’가 우리 최고의 국익이 된다면, 서글프지 않겠나. 호르무즈에 우리 군인을 보내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든, 파병을 거부해 당분간 곤욕을 치르든, 이번만큼은 ‘한숨 돌렸다’ 치고 넘길 일이 아니다.
권혁범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