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성격이 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뉴스와 영상, 글 속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가려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정보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신뢰의 문제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지식 자체를 다시 묻는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과거에는 사진과 영상이 사실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였다. 그러나 그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AI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실제처럼 만들어내고, 실제 인물이 하지 않은 말을 자연스럽게 하기도 한다. 이른바 딥페이크 기술은 ‘보이는 것이 곧 진실’이라는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는 눈으로 본 것조차 의심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중요한 점은 AI가 거짓을 의도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AI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학습된 데이터의 패턴을 바탕으로 가장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낼 뿐이다. 문제는 그 ‘그럴듯함’이 종종 진실보다 더 설득력 있게 보인다는 데 있다. 우리는 사실이 아니라 설득력에 의해 판단할 위험에 놓여 있다.
과학철학자 포퍼는 과학을 반증 가능한 지식으로 보았다. 과학은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고 검증과 수정의 과정을 거치며 신뢰를 쌓는다. 그러나 AI가 만들어내는 정보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결과만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소비하게 된다. 이는 과학이 구축해온 신뢰의 방식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세상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했다. AI 역시 단순한 도구를 넘어 현실을 구성하는 틀로 작동한다. 어떤 정보를 강조하고 어떤 것을 배제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달라진다.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인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조직하는 힘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학은 기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AI가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에 따라 정보의 방향은 달라진다. 우리는 AI를 객관적이라고 믿기 쉽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선택과 사회적 조건이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태도다. 우리는 정보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해석하고 질문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출처를 확인하고, 비교하고, 그 정보가 만들어진 조건을 묻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보를 찾는 능력이 아니라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는 문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학교 교육, 언론, 공공기관 모두가 정보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기준과 장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AI가 만든 정보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시대에는 ‘무엇이 맞는가’보다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교육이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언론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정보를 검증하고 맥락을 설명하는 기능이 더욱 요구된다.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정보의 신뢰를 지키는 마지막 장치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AI 기술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데이터의 편향을 줄이고,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며, 사용자가 결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가능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기술의 책임 또한 함께 커진다.
결국 우리는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사고의 방식도 발전시켜야 한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판단은 더 어려워지고, 기준은 더 중요해진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정교한 기준이다. AI가 만든 정보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정보를 믿을 것인가이다. AI는 정보를 만들 수 있지만, 신뢰를 결정할 수는 없다. 그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