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조8000억 원. 2021년 한 해 동안 90만여 명의 수산업 종사자들이 수산물로 일군 매출액이다. 이는 같은 해 우리나라 GDP 2057조4000억 원의 약 3.6%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에는 30억 달러 규모의 수산물이 해외로 수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수치는 우리 수산업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 삶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하다. 우리나라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55.64㎏으로 포르투갈에 이어 세계 2위다. 일본(45㎏) 중국(40㎏)과 견줘봐도 20% 이상 많다. 수산물 없는 밥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국민에게 수산물은 일상 속 필수 음식이 됐다.

그런데 국가와 국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수산물이 지금 위기의 기로에 섰다. 한반도 해역 어종들의 분포가 급격히 변하면서 텅 빈 바다로 조업에 나선 어업인들은 생계에 직격탄을 맞았다. 양식장에 빼곡히 차 있어야 할 물고기들은 온데간데없고, 허연 배를 내민 채 폐사하기 일쑤다.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기후변화다. 20여 년 전부터 그 위험성에 대한 경고와 대비를 제기했지만,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근래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누구도 기후변화로 인한 전 세계적인 피해를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반도 바다는 그 충격이 더 크다. 세계 평균보다 빠른 수온 상승으로 수산물의 산란, 서식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특히, 국민이 즐겨 먹는 대중성 어종의 어획량이 급감하는 추세다. 2000년 22만ｔ이었던 오징어 생산량은 2023년 2만ｔ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고등어 갈치 참조기 멸치도 각각 20%가량 감소했다. 반면 2007년까지 동해에서 잡히지 않던 태평양 참다랑어와 같은 대형 어종의 어획 비율은 최근 크게 늘었다. 수온이 계속해서 오른다면 200여 년 전 조선 수산학자인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기록한 한반도 해역의 어종을 먼 훗날에는 더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국내 수산물 생산량 70%를 차지하는 양식수산물도 타격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우럭 전복 멍게 등 국내 주요 양식 품종의 생존 한계 수온은 28도인데, 이를 넘어서는 날이 잦아졌다. 이로 인해 지난해 피해 규모가 1400억 원을 돌파, 2012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산물 생산자인 어업인들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다. 수산경제연구원이 올해 초 기후변화에 대한 어업인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5%가 기후변화가 어업경영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대응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어장환경 변화와 소득 감소를 꼽았다. 대응 수단으로 기후변화 대응 기금을 마련하거나, 보험이 이미 도입된 양식업처럼 어선어업 역시 재해보험 도입의 필요성을 가장 많이 제시했다. 아울러 감척과 같은 업종 내 경쟁 완화 방식을 통해 수산업 구조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정부 정책 역시 어업인의 현실 인식과 같은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를 단순한 재난이 아닌 수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전환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법적 근거 마련을 통해 정책 추진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어업인들도 그 누구보다 이러한 변화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걸 이번 조사에서 확인했다.

기후변화는 이처럼 기존 질서로 수산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바다는 빠르게, 그리고 되돌릴 수 없게 변하고 있다. 바다를 무대로 삼고 있는 수산업도 직접적인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기상청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2100년 GDP가 2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단순 국가 경제의 피해를 넘어 식량 안보 문제, 즉 수산물을 먹고 사는 국민의 삶에 미치는 파급 효과까지 감안하면 숫자로 환산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수산업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수산업 질서의 전환 또는 재편 등 근본적인 대응책이 요구되며, 어업구조 변화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위기에 놓인 수산업을 혁신의 기회로 만들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