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도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는데, 왜 굳이 사야 하는가.” 누구나 던질 법한 질문이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 공공도서관이 잘 갖춰져 있고, 원하는 책 대부분을 무료로 접할 수 있다.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는 점은 분명 기쁜 일이다. 그러나 책을 ‘소유해 읽는 경험’은 대출로는 대신할 수 없다. 밑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고, 여백에 생각을 적는 행위는 빌린 책에서는 쉽지 않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 다시 펼칠 수 있는 권리는 ‘내 책’이기에 가능하다. 소유한 책은 시간이 흘러도 내 서가에 남아, 한 권의 책 안에 내 삶의 흔적을 담아낸다.
이런 맥락에서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책 사줄게 프로젝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주의 작은 독립서점 ‘앤’에서 시작된 이 활동은, 어른이 책값을 미리 결제해 놓으면 청소년이 서점을 찾아 자신이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직접 골라 선물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방식은 단순하지만 파급력은 크다. 따뜻한 아이디어 하나가 지역을 넘어 전국 곳곳의 동네서점으로 퍼져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다. 책을 나누는 손길이 곧 세대와 지역을 잇는 새로운 연결망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서점 ‘크레타’도 지난 8월부터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지금까지 총 12명의 어른이 마음을 모아 62만5000원을 후원했고, 이 금액은 청소년을 위한 책 선물로 사용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적은 액수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익명의 어른이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지갑을 연 마음과, 청소년이 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이 담겨 있다. 책 한 권이 건네지는 순간, 청소년은 선한 어른의 존재를 경험하고, 자신 또한 언젠가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낀다. 동시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는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책 한 권에 담아 전한다.
이 프로젝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청소년에게 책을 건네는 일은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세대 간 연대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책을 쉽게 사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른들의 응원은 자존감을 북돋우는 격려가 된다. 이는 단순히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청소년의 성장을 지켜보고 응원한다는 공적 약속과도 같다.
이 과정에서 지역서점의 존재 이유도 새삼 드러난다. 동네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다. 주민이 모이고 문화를 공유하며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 내는 생활의 작은 거점이다. 책방에서 열리는 북토크 독서모임 전시 같은 프로그램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온라인 대형 플랫폼과 가격 경쟁 속에서 동네서점은 늘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책 사줄게 프로젝트’는 서점이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지역 문화의 인프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운동은 동시에 우리 사회가 독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되묻는다. 우리는 여전히 독서를 시험이나 취업 준비를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독서는 근본적으로 개인을 성숙하게 하고, 사회를 성찰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책을 ‘소유’하고 오래 곱씹는 습관은 사회 전체의 문화적 자본을 키우는 기반이 된다. 청소년에게 책을 선물하는 일은 단순히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서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가장 직접적 방법이다.
물론 도서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도서관은 책에 대한 접근성을 넓히고, 경제적 부담 없이 책을 접하게 한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그러니 도서관과 서점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도서관이 독서의 문턱을 낮춘다면, 서점은 선택과 소유를 통해 독서를 생활 속 경험으로 확장한다.
책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그 책을 건네는 일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행위다. ‘책 사줄게 프로젝트’는 작은 선행을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를 묻는 문화적 선언이다. 청소년이 책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발견하고, 지역서점이 문화 거점으로 남도록 돕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과제다. 책 한 권을 건네는 마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사회의 미래를 단단히 세울 수 있다면, 이보다 값진 투자는 없을 것이다. 작은 손길이 모여 큰 울림을 만들어내듯,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변화가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