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去伴隣兒放紙鳶·거반린아방지연

20년 전에는 나도 소년이었으니(二十年前卽少年·이십년전즉소년)/ 지난 시절 되돌아보면 까마득하다네.(回頭往事却茫然·회두왕사각망연)/ 어렴풋이 남쪽 성 위의 일 기억나니(依俙記得南城上·의희기득남성상)/ 이웃집 아이와 함께 종이 연을 날렸다네.(去伴隣兒放紙鳶·거반린아방지연)

위 시는 조선 후기 문인이자 평론가 이하곤(李夏坤·1677~1724)의 ‘정월 대보름에’(元夕·원석)로 그의 문집인 ‘두타초(頭陀草)’에 있다.

예전에는 정월대보름날에 아이들이 연을 많이 날렸다. 이하곤은 정월대보름이 되자 소년 시절 남쪽 성 위에 올라가 옆집 아이들과 연을 날리던 일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언제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게 되었는지 탄식한다.

그는 진사시험에 합격한 뒤 정7품직인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와 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에 제수됐으나 나가지 않았다. 벼슬살이를 마다하고 고향으로 가 글과 그림, 평론에 천착했다. 장서가로도 유명했다. 또한 전국 방방곡곡 두루 여행한 여행가였다. 그가 남긴 그림 중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춘경산수도’는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이면서도, 겸재 정선의 초기 작품과 연관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 세월을 산 그였으니 ‘회두(回頭)’, 즉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회한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그는 먹물이 많은 지식인이었으니, ‘식자우환(識字憂患)’까지 더해졌을 것이다.

그제가 정월대보름날이었다. 이곳에도 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섬진강 백사장에서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도로가여서 지나는 사람들도 차를 세우고 참가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마을 청년들이 너른 논에서 달집태우기를 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구경했다. 어렸던 필자는 친구들과 달집태우기를 하도록 미리 세워놓은 나무 인근에서 연을 날렸다. 서로 친구들 연 끊어먹기를 했다.

지리산에서는 60대 중반이면 청년 취급을 받지만, 필자 역시 당시를 회상하니 여러 생각이 스친다. 정월대보름날 밤 눈이 많이 내려 지리산이 하얗다. 필자의 머리카락도 거의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