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宿障舊殃湯沃雪·숙장구앙탕옥설

새해의 불법을 그대에게 내리노니(新年佛法爲君宣·신년불법위군선)/ 대지의 풍류 그 기운이 높고 크다.(大地風流氣浩然·대지풍류기호연)/ 묵은 장애와 오랜 재앙 눈처럼 녹이고(宿障舊殃湯沃雪·숙장구앙탕옥설)/ 신령한 빛 두루 비추며 해야 솟아라.(神光遍照日昇天·신광편조일승천)

위 시는 고려 시대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의 ‘설날 아침에(正旦·정단)’로, 그의 문집인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에 들어 있다.

혜심은 불일보조(佛日普照) 지눌(知訥)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어, 간화선을 강조하면서 수선사의 교세를 확장한 스님이다. 그는 전남 나주 출신으로, 1202년 어머니가 죽자 당시 조계산에서 수선사를 만들어 교화 활동을 하던 지눌에게 가서 어머니의 재(齋)를 올린 다음, 지눌의 제자가 되었다.

혜심이 어느 해 설날을 맞아 내린 설법이다. 새해 아침 눈을 뜨니 땅 위 모든 기운이 높고 깨끗하다. 세상에 상서로운 기운이 퍼져 있다. 그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소망을 설했다. 올 한해에는 묵은 장애와 오래된 재앙이 눈 녹는 것처럼 사라지기를 바랐다. 또한 부처님의 자비가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온 세상에 두루 비춰주기를 기원하였다.

혜심의 위 시를 소개하는 건 특정 종교적 차원이 아니다. 새해 덕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아 모든 사람이 좋지 않은 것을 다 말끔하게 씻어내고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있어서이다. 마음속 장애물을 치우고 해로운 업보의 인연 고리를 끊고 복 많이 받자는 의미이다.

갑진년 설을 잘 쇠셨는지? 설 연휴가 이제 막 지나갔다. 필자는 차례를 지낸 후 고향 문중 묘소에 가 조상님들과 부모님 묘소를 찾았다. 묘소에서 내려와 올해 마을 이장을 맡은 문중 총무인 조호곤(65)과 조근식(72) 형님, 그리고 숙모님 댁을 차례로 찾아 새해 인사를 올렸다.

고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점차 명절에 대한 원뜻이 옅어져 우리 설도 문화유산으로만 남을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이 머리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