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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78> 초여름 행복한 가정 풍경 읊은 고산 임헌회(任憲晦)

아이들 소리 내 책 읽는 소리를 듣네(且聽羣兒讀字聲·차청군아독자성)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2-06-12 18:58:01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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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지나고 발 바깥에서 맑은 바람 불어와(雨過簾外淸風至·우과렴외충풍지)/ 낮잠에서 막 깨어나니 온갖 걱정 가벼워지네.(午睡初醒百廬輕·오수초성백려경)/ 아내가 탁주 한 사발 내어오고(一盃濁酒山妻進·일배탁주산처진)/ 아이들 소리 내 책 읽는 소리를 듣네.(且聽羣兒讀字聲·차청군아독자성)

19세기 문신인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1811~1876)의 시 ‘卽事示兒輩’(즉사시아배·즉흥적으로 시를 지어 아이들에게 보여주다)로 ‘고산집’ 권1에 수록돼 있다.

초여름 덥고 건조하던 날씨에 한바탕 비가 뿌리고 지나가니 바람이 불어온다. 잠깐 낮잠이 들었는데 깨어나니 마음이 상쾌하다. 기분 좋게도 아이들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막걸리를 한 사발 그득 가져온다. 소박하지만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겠는가. 가정 행복을 축원하는 글에는 자식들의 책 읽은 소리가 빠지지 않았다. 세태가 많이 달라졌지만, 부모로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아이의 글 읽은 소리였다.

고산의 문인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도 “단지 원하는 것 우리집 절로 복을 구하노니(但願吾家救自福·단원오가구자복)/ 아내는 길쌈하고 아이는 책을 읽어 가난 걱정 없는 것이네(妻纑兒讀不憂貧·처로아독불우빈)”라는 춘첩자를 써 붙였다.

어제 부산에서 시인들이 목압서사에 와 하루 놀다 갔다. 시인들은 목압서사 연빙재(淵氷齋) 기둥 주련에 붙은 칠언 한시 뜻에 대해 물었다. 그 중 ‘午枕聽兒吟好句(오침청아음호구)’라는 시구가 있다. “낮잠을 자는데 아이가 좋은 글귀를 읽는 소리가 들리네”라고 해석해주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시인들은 “좋은 시로다” “저 아이의 아버지 복 받은 사람이네”라는 말을 했다.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1338~1423)도 조선이 개국했을 때 경북 선산으로 물러나 자연을 벗하며 은거하던 야은 길재에게 보낸 시 ‘寄題吉再冶隱’(기제길재야은)에서 “…/ 아내는 잔을 씻어 새로 담은 술동이 열고(細君洗盞開新醞·세군세잔개신온)/ 어린아이는 등불 심지 돋우며 옛 책을 읽으리라.(稚子挑燈讀古書·치자도등독고서)”고 썼다. 행복한 삶의 풍경에는 아이의 글 읽는 소리가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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