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우리가 이룩해 낸 민주주의의 성과와 유산은 적지 않지만, 이제 총선을 앞두고 우리 민주주의가 큰 위기에 봉착한 듯하다.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이달 초 발표한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 따르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지수’에서 179개 나라 중 47위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17위에서 무려 30계단이나 추락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민주주의 하락세가 뚜렷한 42개국을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나라로 분류했는데, 한국도 여기에 포함했다. 또 언론 자유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20개국에도 한국이 끼어 있다.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불통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진행된 공천 과정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공당의 사당화 정도가 범위를 넘어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친위부대 구성에 다름 아닐 정도로 당 대표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거의 모조리 도려내고 있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란 말이 마냥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정당 공천은 정당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참여 경선 이후 꾸준히 시스템 공천을 발전시켜 온 민주당은 이제 허울만 남은 ‘짝퉁 시스템’으로 진보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선 선거는 치르지 않을 수 없다. 총선 결과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지만, 역대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중요한 두 가지 시사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투표 결과는 정당 지지도가 아닌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나 지지도가 좌우한다. 정당 지지도가 아무리 높아도 실제 투표로 이어지는 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가 절대적 변수였음이 최근 선거 결과 분석에서 드러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당 지지도 비율은 여야 합산해도 60~70% 선이고 지지 정당을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의 범위가 넓은 데 반해, 대통령 지지도나 선호도는 긍정이나 부정을 합하면 대체로 80~90% 정도로 입장 표명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나 지지도가 각종 선거 결과에 근접하게 반영되고 있다. 정당 지지도는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데 있어 흔히 착시나 오류를 가져 온다. 작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둘째, 투표율이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보수정당에 불리하다. 현재 세대 간 투표성향은 극명하게 나뉜다. 대체로 30~40대 심지어 50대에 이르기까지 보수정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다. 반면에 60대 이후 세대는 보수정당에 우호적이다. 따라서 투표율이 높다는 건 일반적으로 투표할 가능성이 높은 50대 이상 고령층 이외에 보수정당에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 30~40대가 많이 투표할 가능성이 크므로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투표율 55~60% 이상이면 진보정당 후보에게 유리하고, 그 이하이면 보수정당 후보들이 우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상은 이번 총선에서 전국적인 판세를 예측하는데 유효할 수 있지만, 지역 선거구에서는 지역 간, 후보 간 변수가 만만치 않다. 부산에는 18개 선거구가 있으며, 접전 선거구로 보이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럼, 유권자 입장에서 어떤 기준에서 후보자를 선택할 것인가.

첫째, 부산과 지역구가 처한 현실을 잘 이해하고 이를 극복할 의지를 지닌 후보자를 선택하자. 최근 부산 경제의 현주소는 급전직하이다. 지난 1월 동남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광공업 생산 지수는 전년보다 9.6%나 줄었다. 특히 지난해 감소율은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8년(-14.4%) 이후 가장 높았다. 전국 17개 광역시·도와 비교해도 부산지역의 감소율은 1위를 기록했다. 지역경제의 어려움에 전국 최고의 고령화율,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출산율 등으로 지역의 현실은 막막할 따름이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한 기본적 문제의식은 물론이고 당장 급한 지역경제 소생을 위해 실현가능한 회생 방안을 지닌 후보를 선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인공지능 블록체인 핀테크 등 IT관련 신성장 산업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기후변화에 대응할 강한 정치적 의지를 지닌 후보를 찾아야 한다. 부산경제가 성장 저하의 늪 속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주력산업의 부진 때문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아직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 피상적인 공약 남발인지 아니면 깊은 고민을 담고 제안한 공약인지 식별할 능력을 우리 유권자들은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