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앞두고 오늘의 칼럼은 새해 소망으로 꾸며 보려 한다. 사실 이 새해 소망은 새로운 게 아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꿈꾸는 것이었으니까. 다름 아닌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이다.

부산에서 자란 이라면 부산 사람의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최동원으로부터 이대호로 이어지는 영구 결번 레전드에 대한 존경과 사랑도 있는가 하면,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아빠 엄마 다음으로 ‘잔루’라는 말을 배운다는 자이언츠의 경기력에 대한 풍자도 존재하니 이것은 애정이라기보다 애증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 시점으로 자이언츠는 1984년과 1992년 두 번의 우승을 마지막으로 31년간 우승을 하지 못 했다. 몇 차례 다른 지면을 통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자이언츠 팬 가정 중 조부모 세대만 우승을 경험했고, 부모와 자녀의 두 세대는 우승을 보지 못 한 집이 허다하다. 이른바 자이언츠의 우승이란 할아버지 할머니만의 추억이다. 1994년 이후 역시 우승을 하지 못 했던 LG 트윈스가 그나마 위안거리였지만 지난해의 우승으로 이제는 자이언츠만 바닥에 남아 있는 모양새가 됐다.

원래 자이언츠 팬들은 겨울에 가장 행복하다. 언제나 그랬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했을 때, 이대호가 메이저리그로부터 복귀했을 때, 박세웅이라는 안경 에이스가 생겼을 때. 그리고 해마다 입버릇처럼 외치는 한마디. “올해는 다르다.”

그런데 올해는 진짜로 다르다. 아니, 진짜로 달랐으면 좋겠다.

한국시리즈 7년 연속 진출에 빛나는 명장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것부터 다르다. 로이스터 감독 이후로 이렇게 강력한 존재감을 지닌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적은 없다. 물론 감독이 바뀐다고 팀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국 야구는 선수가 하는 거니까. 하지만 올해는 선수도 다르다. 윤동희 김민석 최준용 등 젊은 선수들이 지난해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세대교체를 시작했고, 일찌감치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나승엽과 투타 겸업을 할 수도 있다는 당돌한 신인 전미르가 도사리고 있다. 반즈-윌커슨 외국인 투톱, 안경 에이스 박세웅과 보배로운 나균안의 선발진은 물론, 구승민 김상수 최준용이라는 물 샐 틈 없는 필승조, 우리의 긴 머리 클로저 김원중까지 믿음직스럽다. 베테랑 포수 유강남이 안방 문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실로 오랜만에 나타난 ‘자이언츠의 공격형 포수’ 정보근이 부상에서 빨리 회복하길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선수 면면을 확인하고 있자니 그동안 자이언츠의 문제점은 딱 두 가지, 공격과 수비였는데 올해는 그 문제점 딱 두 가지만 고쳐졌으면 하는 아주 소소한 욕심이 생긴다.

사실 대부분의 프로야구 팀 팬이 스토브리그 기간에 큰 기대를 품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특히 자이언츠 팀 팬의 기대만을 꼭 집어 ‘설레발’이라고들 비난하는데, 물론이다. 자이언츠 팬은 설레발도 즐겁다. 특히 이전 시즌의 성적이 좋지 않을수록 설레발의 쾌감이 증가하는 반비례의 법칙이 존재하기도 한다.

1984년 자이언츠의 첫 우승은 최동원이라는, 앞으로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절대적 투수가 혼자서 다섯 번 등판해 4승을 올리며 우승시켰다. 1992년은 또 한 명의 안경 에이스 염종석과 박동희의 활약으로 우승했다. 하지만 만약 올해 자이언츠가 우승한다면 ‘올해는 다르다’는 말이 꼭 이 부분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한 두 선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 선수와 전 코칭스태프의 균등한 노력과 단합으로 우승이 이뤄졌으면 한다.

사실 우승을 꿈꾸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아니, 우승이 정말 가능할 지도 모른다. 혹은 우승하지 않아도 좋으니 가을야구만 했으면 좋겠다는 분열적 기대감이 또한 다르다. 보통은 가을 야구만 했으면 좋겠다. 최하위만 아니면 좋겠다는 기대였으니까. 이렇게 ‘올해는 다르다’고 자이언츠의 호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팬이 겨울마다 하게 되는 허망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재미라도 없었으면 우승하지 못 한 지난 31년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쎄리라’ 외치며 사직구장에서 신나는 선수별 응원가를 따라 부르게 될 봄이여 어서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