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취재 보도를 위해 출입을 전담하는 기관을 출입처라고 한다. 정부기관은 물론 시청 구청 경찰서 등이 해당한다. 출입처 입장에선 기자가 껄끄러운 내용을 취재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혹스럽다. 자신들에게 치명적이지만 않다면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보도자료다. 특정 매체가 단독 혹은 특종으로 보도하기 전에 자료를 전체 언론사에 뿌리는 것이다. 이른바 ‘김 빼기’ 작전이다. 노련한 취재원일수록 정보를 숨기면 취재 욕구에 불만 붙인다는 걸 잘 안다. 때로는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게 더 큰 비판을 막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경찰은 9일 신상정보공개위원회를 열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 현행범의 얼굴 이름 등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면서 당적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정당법상 비공개가 원칙이라는 이유로 최종 수사 발표 때도 밝히지 않을 방침이다. 경찰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압수수색해 임의제출 형식으로 당원 명부를 확보하고도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많은 국민이 고개를 갸웃 한다.

피의사실공표죄는 수사기관이 공소 제기 전에 범죄 혐의자의 피의 사실을 누설해선 안 된다는 형법 규정이다. 그러나 검찰이나 경찰은 종종 기소 전이라도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이라며 피의자를 공개 소환하고 수사 상황을 언론에 브리핑한다.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 혹은 불이익을 받은 검사나 경찰관도 거의 없다.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다. 경찰이 이번에 당적 공개 불가 근거로 내세운 정당법 역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처벌 사례가 드물어 관련 판례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 경찰의 이례적인 이번 조치로 피의자 당적이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총선을 100일도 안 남긴 시점에 제1야당 대표가 테러를 당하자 음모론은 끝없이 양산되고 있다. “자작극이다” “배후 세력이 있다” “흉기가 아니라 나무젓가락이라더라” 같은 유언비어다. 일부 정당 인사들마저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재생산하거나 새로운 의혹을 슬쩍 흘린다. 테러범 당적은 이미 정치권을 통해 상당 부분 알려져 있다. 경찰은 그저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래야 불필요한 억측과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공표함으로써 논란을 도리어 키우고 있다. 경찰이 국민 의식 수준을 어떻게 보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경찰의 의식이 국민 수준을 못 따라가는 건 확실한 것 같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