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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화해의 와인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  |   입력 : 2023-08-27 18:55:1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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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한 개는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로 겹친 화살은 부러지거나 휘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의 유대인 강제거주지 게토에서 태어났지만 남다른 수완과 혜안으로 거대한 금융 제국을 일군 로칠드 가문의 창시자, 마이어 암셀 로칠드가 남긴 말이다.
독일 베를린장벽 기념관 앞에 세워진 ‘화해’의 조각상.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세계적인 명품 와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와 ‘샤토 무통 로칠드’. 그 와인에 그려진 다섯 개의 화살 문양은 당시 그가 유럽의 정세를 꿰뚫어 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도록 조력한 다섯 아들과 로칠드 가문의 명성과 부를 상징한다. 로칠드 가문의 번영이 다섯 아들과 후손들의 단합과 협력에 달렸다는 것을 다섯 개의 화살에 빗대어 강조한 것이다.

유난히 더운 한국의 여름 탓에 졸지에 피서가 되어 버린 독일 출장. 시간의 공백이 생길 때마다 습관처럼 홀로 베를린 거리를 배회하던 중 베를린장벽 기념관 앞에서 남녀가 서로 껴안는 모습을 표현한 영국의 조각가 호세피나 데 바스콘첼로스의 청동주물 작품을 만났다. 1977년 ‘재회’라는 제목으로 제작된 그의 조각상을 199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청동주물로 만들어 코벤트리 대성당의 폐허와 일본의 히로시마 평화 박물관에 전시했다. 이어 1999년 독일 국회의사당의 재건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 베를린장벽 기념관 앞에도 설치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 이후 ‘화해’를 촉구하는 의미로 세워진 이 작품에 대해 그는 “유럽은 충격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신문에서 남편을 찾기 위해 걸어서 유럽을 횡단한 한 여성에 대한 기사를 읽고 감동을 받아 조각품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재회만이 아니라 싸우고 있던 국가들의 재회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만 궁극적으로는 상대의 결핍을 채워주듯이, 결핍을 안고 사는 현대인은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통해 서로 행복을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울 기회나 방법은 많지만 서로의 관계 속에서 공통의 화를 푸는 법, 화해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거나 알기는 쉽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진심이 제일 중요하다.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자. 때로는 떨어져 있을 때 덜 상처받을 수도 있다. 치열했던 전쟁의 상처가 화해의 노력과 시간이라는 처방으로 아물어가고 있는 것처럼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 세월과 함께 마음속 깊이 품었던 나쁜 감정들은 조금씩 사라진다. 오히려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하는 궁금함마저 밀려온다.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 거리가 가진 위대한 의미이다.

추억이 담긴 와인을 꺼내 마셔보자. 와인은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을 아련하게 생각나게 한다. 희미한 어둠속에서 고즈넉하게 홀로 앉아 마시는 것도 좋지만 짙은 어둠의 공포와 당혹감을 벗어나기에는 함께 잔을 기울일 친구와 음악이 있으면 더 좋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상처받은 일들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는 회복할 수 있다. 상처받은 ‘우리’를 만나는 시간, 화해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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