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때 연극부 활동을 하면서 학교 축제에서 극작가 이근삼의 ‘30일간의 야유회’를 공연한 적이 있다. 사회지도층이 ‘봉사’ 차원에서 교도소 죄수들과 특별 야유회를 떠나는데, 배가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30일간 표류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폐쇄된 무인도라는 공간에서 기존 세계의 자본을 기반으로 이뤄진 사회계층은 철저히 무너지고, 새로운 권력관계가 발생한다. 기자는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탐욕의 기업인 안중팔 역을 맡았다.

작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웨덴 영화 ‘슬픔의 삼각형’이 최근 개봉했다. 전개가 ‘30일간의 야유회’와 매우 흡사해 더 집중하며 감상했다. 주요 배경인 호화 크루즈엔 수많은 부자가 탑승했다.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은 협찬을 받아 크루즈 여행에 동참, ‘갑질’ 대열에 낀다. 곧 크루즈는 폭풍우를 만나고, 일부만 살아남아 무인도에 갇히게 되는데 이근삼 작품에서도 그러하듯, 여기서도 새로운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재벌 등 크루즈 고객들은 야생 상태에서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력자인 반면 배 청소를 하던 필리핀 노동자는 물고기를 잡고 과일도 따면서 먹을 것을 얻는, 생존에 정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원래 살던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하층민이었던 그는 무인도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자본력이 아닌 생존력으로 ‘캡틴’이 되어 군림한다. 권력에 취한 그가 특권을 놓지 않으려고 선택하는 충격적인 결말은 압권이다.

영화는 우리 사회 권력관계를 만드는 ‘자본’에 관해 논한다. 도입부에서 인플루언서 커플의 남자는 “돈이 다”라며 돈 타령하는 여자에게 “돈 없이도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슬픔의 삼각형은 찌푸릴 때 미간에 드러나는 삼각형 모양의 주름살을 뜻한다. 영화와 연극을 넘어, 우리 삶에서 슬픔의 삼각형은 주로 돈과 연관됐다.

사흘 전 2030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의 분수령이 될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엑스포 유치를 희망하는 부산의 가장 강력한 경쟁도시인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는 엑스포를 위해 10조 원을 투자하겠다며, 막강한 ‘오일머니’를 강조했다. 부산은 돈으로는 밀리지만, ‘미래 생존력’이 될 소프트파워 분야의 강점을 내세웠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그래도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음을 보여줬으면 한다. 엑스포가 열릴 2030년은 지금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일 수 있을 테니까.

이선정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