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선 당시 해양수산 분야 공약개발 팀장을 맡아서 내놓은 3개의 공약 중에 해양수산부 부활 및 부산이전과 선박금융공사의 설립이 들어 있었다. 해양수산부 부활은 대선 후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면서 바로 실현됐고, 선박금융공사 설립은 즉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다른 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설립으로 마무리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운·조선업의 극심한 불황으로 인해 18대 대선 당시는 해운기업은 물론 조선업체에서도 정책자금의 지원이 절실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선박금융공사와 같은 정책금융에 대한 요구가 분출하고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대선공약으로 제안했고, 또 채택은 됐지만 당시 상황으로 볼 때는 선박건조자금을 지원해도 회수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태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설립에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설립되었을 때는 매우 불안한 상태였지만, 2019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예상치 못한 해상운임의 단기 급등이 약 3년을 이어와 해운회사들은 유례없는 이익을 창출하게 됐다. 지원한 자금의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기에 주가와 연동된 회사채를 인수, 자금을 지원한 HMM의 경우는 사상 유례없는 영업이익과 주가 폭등으로 한국해양진흥공사 역시 최대 실적을 기록하게 된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데이터에 기반해서 결정이 내려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사업가의 사업상의 결정이나 정책당국의 정책적 선택이 데이터 외에도 많은 변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양수도 부산의 입장에서도 해양진흥공사는 긍정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만드는 듯하다. 해사법원 설립 등 몇 가지 이슈를 다루면서 수도권의 해운회사들을 접촉한 적이 있는데 해양진흥공사 설립 이후 일부 자금 지원을 받아보니 필요할 때 자금지원이 원활하게 된다면 본사를 부산에 두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의견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업 활동의 대부분이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해운회사에서도 영업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서울에 본사를 두는 것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적 기업활동은 개별기업 마다의 여건에 따라 재원조달의 수월성과 영업의 수월성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는 해운불황기에 설립된 해양진흥공사가 긴급한 자금 수혈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하면서 금융 여건이 해운회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본사 입지와 같은 주요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호를 준 셈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16년 한진해운 도산을 전후해 우리 해운업계가 선박건조자금은 물론 운영자금 지원에 목말라하던 시기를 생각해 보면, 우리 해운업체에 적기에 적절한 해양금융을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2위의 환적항, 세계 7위의 컨테이너항, 국내 컨테이너 물동량의 75.6% 처리 등 국내 최대·세계적인 항만도시, 매논보고서상 1500개 도시 중 11위의 해양도시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부산을 장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MM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운회사의 대부분이 본사를 서울에 두고 있어서 세계적인 해양도시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실속을 챙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해양도시로서 발전계획도 능동적으로 그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해운의 초호황은 이제 저물어 가고 서서히 운임하락 등 해운산업의 본격적인 경기 하락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더 큰 위기에 대비하고 해운경기의 변곡점에서 우리 부산이 해운산업에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부산시, 부산 경제계, 부산의 금융권, 부산시민이 해운금융의 주도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칭 부산해운투자기금을 설치해 부산에 본사를 가진 내외항 해운기업이 일시적 어려움에 직면할 때 금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