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은 구하셨어요?”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지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설명을 주절주절 길게 늘어놓거나 아니면 아예 입을 꾹 다물게 된다. 예식 장소나 신혼여행지는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었지만, ‘집’ 문제만큼은 아직 내게 불가항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대출 금리와 부동산 정책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봐도 아직은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지금 사는 집의 전세 만료 시기와 현재 확보 가능한 예산, 앞으로 매달 갚아나갈 수 있는 금액의 한도, 그밖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플랜 A, 플랜 B, 그리고 또 플랜 C를 세운다.

어느 동네에 집을 구할까보다 더 고민인 것이 신혼집은 몇 평이 적당할까 하는 문제다. 자취를 하면서도 내내 월세방만 전전하다 1년 전에 겨우 생애 첫 전셋집을 구해 살았으니 사실 큰 집은 바라지 않는다. 자그마한 투룸이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당연히 방 하나는 부부의 침실일 테고 나머지 방은 어떤 용도로 쓰이게 될까 상상하다 보면 새삼 예전의 손바닥만 한 원룸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비록 작은 월세방일지라도 그 공간은 오롯이 나만의 침실이자 나만의 거실이자 나만의 작업실이었으니까.

여자가 픽션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문자 그대로의 좁은 의미의 ‘픽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쓰는 행위’를 인간이 현실을 견디고 자기 그대로의 존재로 살아가게 하는 힘 정도로 이해한다. 아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진실로 믿는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도 작은 방 안에서 노트북 펼쳐두고 글을 쓰고 고치는 동안, 조금 더 나다운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었으니까.

집중적으로 글을 쓰던 그 시절의 느낌이 그리워 올해 초에는 글쓰기 모임을 하나 새롭게 시작했다.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었던지, 주변 지인들에게 모임을 제안했더니 다들 흔쾌히 수락했다. 외부 홍보 없이도 금세 멤버가 채워졌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멤버 전원이 여자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들이 2, 3주에 한 번씩 모여 각자가 써온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눈다.

출간을 목표로 한다든가 신춘문예에 도전한다든가 하는 목적성을 가진 모임은 아니다. 외부에 발표하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글, 자유롭고 솔직하게 자기검열 없는 글을 쓴다. 주로 일상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지만, 민감한 가정사나 애써 감춰두었던 아픔이 글에 담길 때도 있다. 우리는 이야기 구조나 문장 표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룬다. 맞춤법 지적도 하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 썼다 지우며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글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다.

한 책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엄마이자 딸, 동시에 누군가의 아내이자 또 누군가의 며느리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동안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고, 혼자선 미처 보지 못했던 사실을 돌아보게 된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도 하지만, 서로 휴지 한 장씩 부여잡고 실컷 이야기를 나누다 모임을 마칠 때 즈음이면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집. 결혼 후 자신만의 방 한 칸은커녕 책상도 없이 하루를 견뎌야 하는 삶은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시대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존재한다. 나의 어머니가 그랬고, 어쩌면 나 역시도 당분간은 그래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나에게 ‘자기만의 방’ 대신 ‘우리들만의 책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는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종이 위에 눈물로 털어놓은 자기 고백이 자신의 치부가 되지 않으리라는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는 한 책상에 둘러앉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안전하게 둘러진 공적인 글방이자 사적인 서재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한 문장 썼다 지우고 또 한 문장 썼다 지우며 감정과 생각을 또렷이 다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