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일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에서는 물을 사 먹는다고 했다. 심지어 콜라보다 물이 비싸다고 하자 아이들은 ‘와’하며 탄성을 질렀다. 당시 체육 시간에 땀을 흘리거나 목이 마르면 수돗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곤 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의 일이다. 우리 반 학생은 70명 가까이 됐다. 얼마나 학생이 많았는지 교실에 책상이 빽빽하게 들어차 빈 공간이 거의 없었다. 학생은 많고 대학은 적어 한 반에서 4년제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은 30명도 안 됐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는 말할 것도 없고 4년제 대학 진학도 쉽지 않았다.

현재 시각으로 보면 참으로 황당하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다니. 지금 학생들은 마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생수 또는 정수기에서 나온 물을 마신다. 대학은 또 어떤가. 학생보다 대학 입학 정원이 더 많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4년제 대학에 갈 수 있다. 단지 학교 간판이 문제가 될 뿐이다. 심지어 학생이 계속 줄어 미달사태가 속출하고 있으며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오랫동안 진행된 게 아니다. 단지 기자의 인생 일부분에서 일어났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인지(7만 년 전)·농업(1만 2000년 전)·과학(500년 전) 3대 혁명이라고 했다. 과학 혁명으로 변화의 주기와 속도가 빨라졌다. 변화의 방향도 예측하기 어렵다. 만약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면 미래를 알 수 있다. 미래를 안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송중기가 보여줬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미래를 안다는 것은 변화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금 부산 상황이 그렇다. AI도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 7년 후의 미래를 뜻밖의 선물(?)로 받았다. 바로 영도다. 영도가 왜 부산의 미래인지 구체적인 통계로 살펴보자. 지난해 10월 기준 영도구 전체 인구 10만 8505명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3만 2620명으로 30.1%를 차지했다. 영도의 고령인구 비율이 30%를 넘어선 것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22.2%인 부산의 고령인구 비율이 7년 후인 2030년 30.1%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즉 2022년 10월 영도의 고령인구 비율과 2030년 부산의 고령인구 비율이 소수점 한자리까지 같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29년 영도의 고령인구 비율이 38.7%에 달하는데, 2040년 부산의 고령인구 비율(38.4%)과 비슷하다.

통계가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2030년 부산의 모습이 현재 영도에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러니 7년 후의 미래를 선물로 받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반론도 가능하다. 고령인구 비율 하나만으로 확대해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할 수 있다. 이렇게 답하고 싶다. 고령인구 비율은 다른 분야와 동떨어진 독립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고령인구 비율은 출산율, 젊은 층 인구 유출, 경제 구조 변화, 복지, 생활환경 등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부산시의 ‘2022년 도심 불균형 실태 분석 모니터링 (중간)보고서’를 보면 영도는 부산 16개 구·군 중 산업경제와 주거생활환경이 최하위다. 인구활력은 중구에 앞선 15위다. 고령인구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영도와 부산의 유사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으로 외지인이 급격하게 유입됐고, 한때 제조업이 경제의 주축이었으며, 이제는 젊은 층의 유출로 고민에 빠져 있다. 이 정도면 영도를 통해 부산을 보는 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영도를 실컷 떠든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영도에서 태어나 10년을 살았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 가장 많은 곳이다. 최근 산복도로 인근에 있었던 어릴 적 집을 찾아갔다가 낭패를 봤다. 옛집은 아파트단지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릴 때 뛰어놀던 골목길에는 빈집만 남아 을씨년스러웠다. 영도 전체가 그런 건 아니었다. 흰여울문화마을(예전 영도 사람들은 ‘이송도’라고 불렀다)과 복합문화공간 피아크에는 관광객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영도의 두 얼굴은 극과 극이었다.

이제 부산이란 관점에서 보자.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시대에 무려 7년이란 시간을 선물로 받았다면 그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도의 현재를 탐색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다음 부산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그것이 2023년 영도가 2030년 부산에 준 선물이자 숙제다.

태종대초등학교 졸업생은 이렇게 말했다. “영도는 항상 그리운 고향이지만 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영도와 부산을 항상 그리운 고향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고향으로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영도로 달려가자.

김희국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