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건물 사이로 불어닥치는 빌딩풍의 발생 환경과 위험도를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부산대 연구팀이 부산의 대표적인 고층 건물인 해운대 엘시티와 마린시티 일대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다. 이번 연구는 바람이 건물과 그 주변 지형을 타고 어떻게 부딪히고 모이고 강해지는지 보여준다. 최고 높이가 101층에 달하는 엘시티의 경우 태풍이 불 때 내륙에 비해 최대 4배 이상 강한 바람이 주변에서 부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8월 태풍 ‘힌남노’ 때는 초속 80ｍ를 찍은 지점도 있었다. 최고 72층인 마린시티와 주변에서도 초속 41ｍ 이상의 강풍이 계측됐다. 초속 30ｍ면 지붕이 날아가고, 50ｍ 이상이면 건물이 붕괴될 수 있는 수준이다.

2022년 현재 부산에는 50층 이상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이 총 42개동이나 있다. 어느 새 전국 초고층 빌딩 가운데 40%가 몰린 마천루 도시가 된 것이다. 한동안 해운대에 집중됐으나 이제는 서구 송도해수욕장, 북항 재개발 지역 등 해안가를 중심으로 점점 확산하는 추세다. 조망을 중시하는 바닷가 뿐만 아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내륙에서 신축되거나 계획 중인 건물도 50~60층짜리가 즐비하다. 아직 빌딩풍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법이 미비한 상태에서 이같은 마천루의 속출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층 건물 사이를 바람이 비정상적으로 이동하면서 강해지면 건축물 자체는 물론이고 주변이나 보행자의 안전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지난달 부산에 특별한 이유없이 강한 돌풍이 불자 사람들의 이동이 잦은 대낮에 해운대 고층아파트의 유리창이 떨어져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몇년 전엔 건물 곁을 지나던 노인이 바람에 넘어져 부상을 입기도 했다. 여름철마다 반복되는 태풍 때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최근 몇 년 새 ‘마이삭’ ‘하이선’ ‘힌남노’ ‘난마돌’ 등 강력한 태풍이 예고되거나 불어닥치면 건물 입주자들이나 동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실제로 심각한 시설물 파괴도 잇따른다. 이제는 빌딩풍 피해가 일조권이나 빛공해 못지 않게 주위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건물 안전, 주변 소음, 보행자 안전 등에 대한 관련법을 둔 이유이기도 하다.

고층 건물을 지을 때 빌딩풍에 의한 환경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의원 발의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전국 최초로 제정된 부산시 조례도 제대로 효과를 발휘 못한다. 기상이변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자꾸 하늘로 올라갈 생각만 하지 말고 건물과 건물 인근에 바람에 의한 피해가 없는지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빌딩풍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해 건물 허가 단계에서 예방안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하고 기존 건축물에 대해서도 연구팀의 제안을 바탕으로 저감책을 적용해 더 크고 심각한 재해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