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한때 우리나라 설치 대수가 OECD 평균의 3배에 달할 만큼 흔했다. ATM기는 2014년 8만7200대 정점에서 감소해 올 6월 현재 3만503대로 집계된다. 조만간 2만대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현금 사용이 줄어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게 은행 측 철거의 주된 사유다. 그러나 이는 소비자 접근성보다 ATM 관리비 절감이 우선이라는 속내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2000년대 초반 정부 기업 노동계가 주 5일 근무제 도입 여부를 놓고 한참 밀고 당기던 중이었다. 때마침 은행권에서 먼저 합의가 도출됐다. 경제 모세혈관인 은행이 토요 휴무로 전환되면 상당수 기업도 근무 패턴을 바꿀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정부도 사측을 독려했다. 덕분에 은행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보다 2년이나 빠른 2002년 7월 1일부터 주 5일제에 들어갔다. 다른 이들이 일할 때 은행 직원들은 임금 삭감 없이 토요일과 일요일을 완전히 쉬었다. 이제는 주 5일 근무를 주 4.5일로 더 줄이자고 한다. 금융노조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지난 9월 파업을 선언했다. 지켜보는 여론은 싸늘했다.

시중은행 지방은행 할 것 없이 요즘 은행은 오전 9시30분에 문을 열고 오후 3시30분이면 닫는다. 이마저도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라며 영업점을 폐쇄한다. 고객이 업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5시간이 전부다. 오전 9시30분과 오후 1시면 은행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표를 뽑고도 1~2시간 대기는 기본이다. 디지털에 약해 창구를 찾은 어르신들도, 시간을 쪼갠 직장인들도 아우성이다. 은행권 영업시간 1시간 단축은 작년 7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봉쇄 수준으로 강화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거리두기가 실내 마스크 착용의무 외에는 모두 해제된 지금까지 은행만 유일하게 원복하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의 대중화로 대면이 필요 없어졌다는 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보이스피싱 예방 등 목적으로 보안이 강화돼 영업점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오히려 많아졌다. 일정기간 뱅킹 접속기록이 없으면 영업점을 방문해야 계좌가 살아나고, 계좌 해지 역시 경우에 따라 창구에서만 가능하다.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장으로 기대했던 혁신은커녕 각종 수수료와 금리로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는 여전하다. 이러니 “엄청난 예대마진으로 직원 연봉은 1억 원 이상 지급하면서 정작 이용자 편의는 안중에 없다”는 불만이 괜히 배아파 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