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불쑥 다가와 어느덧 중순을 향하고 곧 연말이 되고 또 새로운 해가 시작될 것이다. 또 다른 희망과 목표를 세우며 새해를 맞이하겠지만 지난 새해 다짐이 아직 유효한지 되새겨 볼 일이다. 올해는 나에게, 또 우리 사회에 유난히 다사다난한 한 해인듯하고, 여전히 뭔가 위태로운 시간이 계속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중앙과 지방의 행정부가 바뀌었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번잡한 변화들로 다소 피곤한 뉴스가 이어졌으며, 해를 넘기면 곤란해지는 문화예술행사들로 일정은 가득하다.

그렇다면 가득한 일정만큼 열정 또한 가득한가? 질문해 본다. 대답은 뜨거웠다. 그 뜨거운 열정에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얼마 전 우연히 정말 작은 소극장에서 1인극을 볼 기회가 생겨 물어물어 찾아갔다. 다른 스무 명 남짓한 관객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시간여 동안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배우의 숨소리와 눈빛, 손짓 등은 이 시간이 생생히 살아있는 시간임을 알게 해주었고, 약간 비틀린 그림자의 조명 선은 그런 그대로 완벽하지 않아서 더욱 잔잔하게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공연은 조금은 미완성인 듯했지만 연출과 배우의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감성의 수작이었고, 특히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디지털 감성을 아날로그적 감성과 결합해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10년 후 중진예술가가 될 지금은 청년인 젊은 예술인의 열정은 열악한 공간과 빈약한 기술과 부족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보다도 창의성과 독창성으로 가득한 뜨거움이었다. 공연 후 가진 관객과 대화시간에서 공연준비 과정 에피소드와 기술적, 재정적 어려움 등에 관해 연출가로부터 설명을 들으니 이 뜨거운 열정이 다음엔 어떤 공연으로 이어질지 기대하게 됐다. 또한 이번 공연에서 부족했던 부분들이 지원되고 후원된다면 놀라운 공연예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예술 창작을 위한 제반 여건은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정부보조금 사업 등 공적 지원이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변화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역균형과 분권, 공적지원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지역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1997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모든 광역시·도에 지역문화재단이 운영되고, 이듬해인 1998년부터 현재까지 116개의 기초문화재단이 설립 운영되고 있다. 아직 지역에서 문화재단을 설립하지 못한 기초자치단체는 기초단위의 지역문화재단 설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 문화예술계 전반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초문화재단 설립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고 생활문화 영역이 크게 확대되면서 문화예술행정 서비스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역에서 기초단위 문화재단은 지역 생활권 근거리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는 ‘지역이 해답이다, 문화로 소생하는 지역공동체’를 비전으로 한다. 예술가 지역주민 행정가,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제는 지역에서 지역 속 문화예술로 답을 찾아야 하고 더 늦지 않아야 하며 좀 더 촘촘하게 예술행정이 함께 할 때 지역공동체는 뜨거운 열정의 문화로 다시 살아날 수 있고 이것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술행정 일선에서 예술가와 지역주민의 매개자로 역할 하는 문화재단은 그 어떤 행정보다 창의적이어야 하며 상상력을 토대로 그 어떤 예술가보다 더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문화예술 진흥·창달·향유·지원’, 문화재단 설립운영 목적에 쓰인 공통 단어들에서 생생히 살아있다는 현장감은 보이지 않는다. 공허한 행정용어 나열로 느껴진다.

프랑스 국립극장 행정감독 알랭 에르조그(Alain Herzog)는 ‘예술가는 불가능한 것을 제시하고, 행정가는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로 예술가의 한계 없는 예술적 가능성과 예술행정의 창의성을 주장했다.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지역 예술가들은 지금, 여기 우리 곁에 항상 있다. 그 뜨거운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예술행정을 기대하며 새로운 다짐을 하는 모두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