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부실 위험이 고조되던 2009년 말, 부산 사하구 당리동 지하철역에 연 10%의 금리를 준다는 광고가 붙었다. 당시 업계 1위를 달리던 부산저축은행이 내건 특판상품이었다. 시중은행은 4~5%, 다른 저축은행도 많아야 6~7%였을 시기다. 한 푼이라도 불릴 욕심에 고객들이 몰려갔다. 하지만 3년 만기 적금을 찾기도 전에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고라는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터졌고, 예금자보호 한도를 초과해 돈을 맡겼던 가입자 상당수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1960~70년대에는 예금이나 적금 금리가 연 20%, 심지어 30%까지 책정되는 일이 잦았다. 이때 흔히 쓰이던 말이 ‘억만장자’다. 30% 예금일 경우 1억 원을 은행에 넣어두면 매달 200만 원이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 그때 물가 수준으로는 생활비 걱정을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면서 20~30%는 언감생심, 금리는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어 최근엔 1%대까지 떨어졌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이다. 저금리가 워낙 심하다 보니 일정액 이상이 아니면 아예 예금을 안받는 은행도 생겨났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두 자릿수 예·적금 금리시대가 찾아왔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신협에서 1년 만기 10% 적금을 판매했는데 영업점에선 새벽부터 오픈런 사태가 벌어지고 온라인 판매분은 6분만에 완판됐다고 한다. 인터넷은행도 10% 이율을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고 있다. 연 10%라면 주식이나 가상화폐 수익률 못지 않은데다 안정적이기까지 하니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다. 2일 현재 금융감독원 공시 상으로 최고 이율은 6% 안팎이지만 한국은행이 미국 연준에 맞춰 내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몇차례 더 인상하면 조만간 10% 이상의 상품이 나올 조짐도 있다.

고성장엔 고금리, 저성장엔 저금리가 상식이다. 나라 경제가 금리 인상 폭을 능가할 정도의 투자와 성장이 가능한 구조라면 기업이든 국민이든 일정 수준까지는 고금리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저성장이 고착화된 시대다. 성장은 사실상 멈춰 있는데 금융당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예금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는 더 뛴다. IMF 금융위기 때 금리가 일시적으로 대폭 상승하자 개인 파산과 도산으로 울부짖는 한편에선 마스크 쓰고 표정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고금리든 저금리든 서민과 중소기업의 고통은 마찬가지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