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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법고창신

  •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  |   입력 : 2022-09-13 19:23:0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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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형님은 전통 통영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다. 내가 아는 거개의 통영사람들은 다들 손재주가 대단하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뚝딱 쓱싹 만드는데 지켜보면 탐이 날 정도의 작품이 나온다. 낫으로 툭툭 깎아 만드는 지겟작대기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그런 걸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나도 작품 보는 눈이 좀 있고 이것저것 소용 닿는 물건 만드는 걸 좋아한다.

통영사람들의 손재간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제6대 이경준 통제사 때 지금의 통영시 문화동인 두룡포에 설영되면서 군수품이나 진상품을 제작하는 공방이 들어선 덕 아닌가 한다. 통제영 공방에 소속된 통영 장인들이 부채 소반 나전칠기 갓 등 뛰어난 공예품을 만들었고, 그 갈고닦은 기술이 후손들에게 전해졌으리라 짐작한다. 또 그런 배경에서 자라다 보면 눈썰미가 절로 야물게 된다.

어릴 적 사촌 형님은 통영 연을 기차게 잘 만들었다. 온갖 치성으로 마치 분 같은 사금파리를 먹인 연실을 두둑하게 감은 커다란 자새로 마치 춤추듯 감았다 돌렸다 튕기며 방패연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았다. 연도 대나무를 정교하게 깎아 대고 한지를 붙인 다음 먹으로 문양을 넣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부채 만드는 방식이랑 겹친다.

삼도수군통제영에 설치했던 열두 공방을 일제가 강점기 시절에 허물었다는데, 근자에 다시 복원한 공방에서 전통부채를 만든다. 통영 부채는 특별히 미선이라 이름하는데, 아름다울 미(美) 자가 아니라 꼬리 미(尾) 자다. 부채 모양이 물고기 꼬리지느러미 모양을 닮았다 해서 그리 부른다. 대개 꼬리지느러미 끝이 갈라진 물고기가 많은데 통영 부채는 꼬리가 둥그스름한 민물고기 미꾸리 꼬리랑 닮아있다.

얼마 전 작품 전시회를 연다 해서 축하차 갔더니 부채에 붙은 가격이 칠십만 원을 넘어선다. 부채를 팔아 공방도 운영하고 들인 공을 셈한 가격이 돼야 하니까 그 값도 어쩌면 적을지 모른다. 또 아무리 부채를 잘 만들어도 그려진 그림이 허접하면 부채의 품격이 확 떨어진다. 그림 잘 그리는 작가에게 부탁해서 좋은 그림을 받아 붙여야 하니까 의외의 비용이 붙는다. 부챗살부터 손잡이까지 일일이 손으로 깎고 다듬어 옻칠에다 한지로 풀칠하는 것까지 예사 노고가 아니기에 기실 그 값을 쉬 따지기 어렵다.

형님은 뭐든 챙겨주고 싶어서 마음에 드는 부채를 골라 가져라 하는데 경우란 그런 게 아니다. 이런 거의 문화재급 부채가 생기면 혹여 상할까 싶어 제대로 쓰지 못하고 고이 모셔두게 된다. 부채가 필요할 때 부쳐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있으나 마나다. 오히려 넣어둬야 하는 공간까지 잡아먹는다. 부채가 제 역할을 못 하면 그건 부채가 아니다. 세상 이치가 그런데 어리석은 줄 모르고 산다. 적당히 비싼 부채를 사서 고맙게 잘 쓰고 헤지면 적절한 시점에 이별하는 게 맞다.

요즘 세상에는 부채를 쓰는 사람도 드물고 또 몇 번 부치다 던져버려도 아무 미련 없을듯한 제품 일색이다. 중국산 접부채도 가격이 말도 안 될 만큼 싸지만, 젊은이들은 그것도 외면하고 전지로 작동하는 핸디팬을 들고 다닌다. 이제 부채는 머잖아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고 말 거라는 생각이다. “가을에 곡식 팔아 첩을 사고 오뉴월 되니 첩 팔아 부채 산다”는 해학 가득한(시방 세상에는 큰일 날) 민요 가사가 있다. 그만큼 예전에는 부채가 필수품이었겠지만 이렇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전통부채를 고집해 만드는 일이 많이 무겁다.

연암 박지원이 제자인 박제가의 문집 ‘초정집’에 써 준 서문이다. ‘옛것을 본받는 자는 자취에 얽매임이 병통이 되고, 새것을 창조한다는 자는 법도에 맞지 않음이 근심이 된다.(간호윤 연암평전 320쪽)’ 법고창신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말이다. 옛것을 본받되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아니다. 옛것 중에 없애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리되 좋은 취지와 근본은 존중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옛것을 몽땅 버리고 얻는 새로움이 아니다. 혁신을 기하지만 예전의 법도와 정신을 담은 재창조다.

세상이 무서우리만치 급변하고 있다. 이 정신 차리기 힘든 세상에 아득바득 움켜쥐고 있는 습속과 강풍에 날리는 전통과 맹렬하게 닥쳐오는 큰물에 나는 멀미를 앓는다. 어리석게 살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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