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한 일간지에 부산의 간호직 공무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격무로 사망한 가운데 부산시가 현장 의료 인력 충원과 근무 여건 개선 등 대책을 내놓겠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코로나 감염 의료인 74%가 간호사였고 그런 상황에서 묵묵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그들의 모습이 매스컴에 노출되며 국민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간호사들의 존재와 중요성이 새삼 주목받았지만, 사실 간호사는 줄곧 보건의료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의료인입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아내인 그들의 의료행위를 국민은 고맙게 생각했고 그들을 코로나19 시대의 영웅이라 불렀습니다. 또 의료 환경의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의사와 간호사 간 대립이 격화되며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의사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대한민국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 국내에서 의료인으로 분류되는 5대 직종은 모두 의료법이라는 단일법에 묶여 있고, 간호법이 의료법에서 떨어져 나가면 의료체계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업무영역이 충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유로 간호법 제정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간호사 업무와 역할, 양성 방안, 근무 환경 등을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다룰 간호법이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일본 싱가포르 대만 홍콩 중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90여개 국가엔 간호법이 있는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 회원국 중에서 간호법이 없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선진국은 의사들이 걱정하는 부분을 몰라서 간호법을 제정했을까요.

현행 의료법이 만들어진 것은 70년 전입니다. 1951년 의료법의 전신인 국민의료법이 제정될 때 의사는 5000명이고, 간호사는 17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의사가 13만 명이고 간호사는 46만 명입니다. 의료계 전체 인력 10명 중 7명이 간호사인데 간호법이 필요 없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아닐까요.

아직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경험하는 시점에서 간호사가 총 46만 명인데도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3.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2명)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인원 부족으로 근로 여건이 악화하다 보니 많은 신규 간호사가 직장을 옮깁니다.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1년 내 45%고 간호사 평균 근무 연수는 7년 8개월에 불과합니다. 전문 의료 인력 보충과 근무 환경 개선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의료 위기 상황에 과연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그때 또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70여 년 세월 동안 가파른 고도 성장을 이어왔습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전망을 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8239억 달러로 세계 10위였습니다. IMF는 올해도 세계 10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경제 규모만큼 국민 삶의 질이 개선되면서 의료서비스 개선 요구도 그만큼 강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에 걸맞은 전문 의료인력의 공급도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2025년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20%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합니다. 고령인구의 돌봄 부담을 가족에게 맡기기에는 한국 사회가 핵가족화됐고, 가족의 개념도 변했습니다. 고령인구의 안정된 건강 관리와 생애 말기에 맞는 돌봄을 충실히 제공하려면 전문적인 간호 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갖춘 간호인력의 확보가 필수입니다. 임박한 초고령 사회에 잘 대비하려면 지금이라도 간호 정책의 새 틀을 짜야 합니다. 이 또한 간호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정치와 경제 논리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필요한 법의 제정을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간호사들의 희생을 영웅으로 포장해 당연시하지 말고 나와 국민의 친구로 지켜주고 싶습니다.

이영희 디자이너·부산노동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