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국이 세계 7대 우주강국 반열에 올라섰다. 지난 6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발사가 성공한 덕분이다. 누리호가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개발된 최초의 우주 발사체라는 점에서 국내 우주 기술 분야에 큰 의미가 있다.

우주발사체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알려진 만큼 항공·전자·통신·소재 등 관련 과학기술과 산업의 뒷받침이 중요하다. 실제로 이번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업체만 해도 300곳이 넘는다. 국방 안보뿐만 아니라 민간 우주여행까지 진행되는 우주항공 분야가 무한히 확장하고 있어 우주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정부 정책 및 범부처 설립 등이 절실해 보인다.

6월 16일 정부가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첨단산업의 초격차 확보를 추진하고 인공지능 바이오 모빌리티·물류 항공·우주 등 성장 가능성 높은 유망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들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 최근 정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초격차 기술력’ 확보 연구에 5년간 약 1조 원을 투입하고 전문인력 7000명을 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구 분야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반도체 분야에 국한된 지원정책만 집중적으로 쏟아내는 정부에 대해 ‘국가전략기술이 반도체밖에 없느냐’는 과학계의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 ‘장관이 반도체 강사냐’는 푸념이 나올 정도로 반도체 강연과 현장 방문 모습만 보여줄 뿐 경쟁국과의 초격차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다른 과학기술 분야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지원할 것인지와 같은 정책 비전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반도체 외에도 여러 국가전략기술에 투자하고 산·학·연 간 실질적인 협력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신임 장관의 행보를 보면 과학기술계의 불균형 성장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정부의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계획에 대해서도 현장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인력 양성 대안책으로 내놓은 ‘지방 국립대에 반도체학과 개설’의 경우, 학과 신설부터 인재 배출까지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된다. 반도체 인력에 대한 수요와 정부의 지원이 5년 후에 사라진다면 쏟아져 나오는 인력들은 갈 곳을 잃게 된다. 과거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에서 코딩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전 국민이 코딩을 배울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지만 5년도 되지 않아 식은 사례를 떠올려 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언제 또 이공계열의 인재상이 바뀔지 모른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우려는 현실적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과 수도권 정원을 공평하게 증원한다고 해도 학생들과 기업의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을 피할 수 없어 지방과 수도권 간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인력양성을 대학 증원에만 맡긴다면 대학교육이 산업의 하부구조로 전락할 위험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은 지역 균형 발전과 미래먹거리 발굴을 위해 지역 역량 강화 및 국가 R&D 지원에 힘써온 노력을 후퇴시키는 일이다.

주요 산업 지원 및 인력 양성 지원은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성과를 보여주기에 급급해 단일 분야에 대한 졸속 지원을 계속하고 비효율적인 정책을 고수하기보다는 속도가 더디더라도 장기적 안목에서 과학기술계와 산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국제적인 위기 상황에 대응하고 첨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구체적이고 점진적인 정책 수립이 절실하다. 바로 정부가 고심해야 할 지점이다.

누리호 발사 성공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기술과 관련 산업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성공적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반도체 분야뿐만 아니라 전력을 다해 육성해야 할 과학기술의 다양한 분야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정부는 편향된 지원을 지양하고 각 분야 과학기술의 유기적 발전을 도모해야 할 때다.

남승훈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