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절반이 지나간다. 매일 1시간씩 기타 연습과 인문학 강의 하나 듣기, 일주일에 2000자 칼럼 한 편 쓰기 등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새해 결의를 다졌다. 신정을 지나 마음이 흔들릴 무렵 구정맞이 결의까지 하였건만 또다시 ‘작심삼일(作心三日)’에 근접하고 있다.

학창시절, 방학이 되면 터질듯한 책가방을 메고 고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들과 친구들은 나의 마음에서 책가방을 지워버렸다. 방학 마지막 날 먼지가 뽀얀 책가방을 보면서 ‘내일부터 새로 방학이 시작된다면…’이라는 뼈저린 후회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평생을 거의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작년 말, 잡코리아가 직장인 52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2021년에 세웠던 새해 계획을 잘 지켰는지에 대해서 10명 중 7명이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했다. 또 다른 통계는 79.8%가 새해 계획을 세웠지만 63%가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흐지부지되고 끝까지 실행한 사람은 8%였다고 한다.

작심은 밥벌레로 사는 뻔한 삶을 버리고 조금 다른 변화를 추구하고자 마음을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루를 돌이켜 새날을 맞이하고 해마다 삶의 문턱을 세워 새로운 삶을 부리려고 애를 쓰지만 결과는 허망하기 일쑤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허상일까?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작심삼일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현상이라고 한다. 어떤 결심을 하고 행동에 옮길 때는 그동안 뇌가 익숙했던 패턴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때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데, 지속시간이 72시간 정도여서 3일이 지나면 포기하고 싶어지게 된다고 한다. 본래대로 돌아가는 게 정상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보통 작심삼일의 이유를 ‘의지(意志)가 약해서’라고 얘기한다. 이 말을 뒤집어 보자. 의지를 강하게 하면 계획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의지가 강해질 수 있을까?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애당초 의지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그 무엇이며 본래대로 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수상쩍은 마음에 의지하는 것은 별로다. 다행히 인간의 행동은 의지보다 상황에 더 크게 영향을 받고, 환경은 의지보다 조절하기 쉽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황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 상책임을 일러준다. 한신(韓信)의 배수의 진(背水之陣)이나 항우(項羽)의 파부침주(破釜沈舟)가 그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는 것 또한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위 환경이나 시대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는 말이다. 나의 작심을 공개해버림으로써 사회적 압력을 자초하는 것도 무너지기 쉬운 마음을 끌고 가는 방법이다. 자의든 타의든 고난이 축복이라는 건 우리 인생 최고의 역설(逆說)이다.

동생들과 생질(甥姪)이 함께 하는 4인조 밴드가 2년 전에 결성되었지만 코로나19로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금년 3월부터 매달 모인다. 4명 모두 기타를 했기에 필자를 제외한 세 명은 베이스 오르간 드럼을 학원에서 타이트하게 학습한다. 지난달에는 가수 김수철의 ‘내일’이라는 곡을 연습했는데, 기타를 맡은 필자의 느슨한 연습은 40년도 넘은 그룹사운드 시절의 초킹(choking) 실력을 불러올 수 없었다. 눈치가 보인다. 삼천포에 기타 고수(高手)가 있단다. ‘에라 모르겠다’. 스스로 고난을 자초했다. 상황의 요구는 놀라운 능력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행운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봤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의 마음이 변할 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못 믿을 게 사람의 마음이다. 무너지기 쉬운 마음더러 새로운 습관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의지보다 환경이다. 시끄러운 카페에서 독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보다 평상심(平常心)으로 조용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느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책을 읽겠다는 의지보다 도서관이라는 환경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신선한 아침 이슬과 인동초 향기가 마음을 부추긴다. 기타 고수와 함께하는 고난이 시작(詩作)되었다. 축복이다.

조갑룡 교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