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역과 분야를 막론하고 초심자와 고수는 존재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숙련기를 거치지 않고 고수가 되는 경우는 없으니, 고수라 불리는 모두는 초심자로부터 비롯한다. 그렇지만 세월을 통과한다고 하여 모든 초심자가 고수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다. 깊이를 길어오는 데에 시간이 전제되어야 함은 맞지만, 그 역까지 죄 참은 아니기 때문이다.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접을 만큼 햇수를 흘려보냈으나 여전히 육아의 세계에서 하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나의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그즈음 하면 ‘재능 없음’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그 세계로부터 파양되거나 스스로 등을 지기 마련이지만, 천륜으로 맺어진 이쪽 세계에서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오죽하면 허물없이 지내는 친우 몇을 붙들고 초심자의 외로움 따위를 토로해보기도 하지만, 별다른 실마리를 찾을 순 없었다. 애초에 뾰족한 수를 기대한 건 아니라지만, 위안은커녕 엄살로 치부할 것까진 없지 않은가!

“다들 그렇게 살질 않나?”, “네가 그렇게 우는 소릴 하는데 ㅅ 씨는 어떻겠니?”, “제수씨에게 잘해라.” 그들이 쌓아 올린 삼단 전개는 거푸집으로 찍은 것만 같았고, 어쩌다 옜다, 하고 던져주는 공감의 적선은 목마른 자의 목을 축이기에 박하기만 했다. 내 쪽에서는 울퉁불퉁하게 못난 속을 드러낸다고 낸 것인데, 돌아오는 대답들은 매끈한 상투성으로 마름질 된 것이 거지반이었다. 여차저차 몰이해의 자리를 쉬 뜰 수 없다는 서늘함 속에서 나는 가만가만히 범상한 사실 하나를 재인식할 수 있었다. 생활이라는 바퀴에 올라탄 이상, 투덜거리면서도 페달 밟는 일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깨달음의 크기에 비해 그에 이르는 과정이 야단스럽다. 벗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지면에 쓰질 않은 이상, 내 마음의 소란을 누가 들을 리 없는데 딸아이가 뒤척인다. 잠기에 반쯤 넘어간 목소리로 아이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살살 긁어줘. 살살.”

“미안.” 다글다글하게 열리는 잡념들을 딸깍 꺼트리곤 다시 손을 움직였다. 아이의 등에 비하면 살집이 투실한 내 손은 터무니없이 크고 거칠다. 긁는다고 해서 저 작은 등을 북북 소리 나게 문지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손톱이 닿질 않게 손가락 끝으로 오르내리는 것뿐. 그렇게 해서 어디 시원하겠나 묻겠지만, 본인 말로는 그렇다고 한다. 살살 긁어주는 손만은 엄마의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무신경하게 보습 따위 돌보지 않길 잘했다고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살살 긁어줄 기회마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사랑은 중단을 모르고 입고되지만, 출하가 불허된다면 아비로서의 난 진작 고장나버렸을 테다. “살살 틀어줘. 살살”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말이다.

외출했다 돌아온 아이는 손을 씻을 때마다 세면대의 물 쏟아지는 소리를 무서워했다. 사방으로 튀는 물도 싫어했다. 세심한 힘 조절로 물살을 조정하는 것이 아이에게 수월한 일이 아닐지 몰라도 어른에겐 손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같은 배역을 매번 달리 소화하는 배우처럼 혼신을 다하며 수도꼭지를 밀어 올린다. “자, 살살 틀었지?” 살살 틀기 위해 들이는 수고가 극적일수록 아이의 얼굴은 밝다. 그러면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꼭 한 번 안아보는데, 아이는 버둥거리며 말한다. “살살 안아달라고. 살살.”

마음을 강하게 먹는 것보다, 몸을 단련하고 힘을 키우는 것보다 무엇이든 ‘살살’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초심자가 아니었던 고수는 없지만, 그들 모두가 초심자의 세월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초심자의 외로움을 공감해주고 끌어주는 고수가 귀하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보내는 국민의 마음은 절반뿐이었다. 저 초심자에게 나머지 국민은 어떤 마음을 보여야 할까? 많이 고민하겠지만, ‘살살 긁어보라’는 작은 주문부터 시작해봄이 어떨까. (참고로 나는 족히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살살 긁는 일이 허다하다.)

정재운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