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절기상으로 여름의 초입에 들어서는 입하(立夏)이며, 농촌에서는 이제 서리도 완전히 끝난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밭을 갈아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옮겨 심는 시기다. 그야말로 온 식구가 일을 해야 하는 가장 바쁜 계절이다. 잡초라 불리는 풀의 세력이 거세지기 시작해 곧 풀과의 기나긴 전투에 돌입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필자는 농촌의 원주민 마을에 살면서 600평 남짓 밭농사를 짓고 있는데 밭이 100ｍ가량 떨어져 있어 올해부터 집 앞의 작은 터를 구입해 텃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며칠 전 땀을 뻘뻘 흘리며 퇴비를 뿌리고 삽으로 밭을 갈고 있는데 큰길가의 땅이라 지나는 마을 어른들이 발길을 멈추어 몇 가지 훈수와 더불어 ‘기계를 사용하지 왜 힘들게 일을 하고 있느냐’고 애정 어린 말씀을 하고 가셨다. 물론 필자의 600평 농사를 삽으로만 하는 건 아니다. 전체의 3분의 2가량의 면적은 봄에 딱 한 번 트랙터를 가진 지인에게 부탁해 밭을 갈고 그 이후로 예초기 사용을 제외하고 뿌리고 심고 관리하고 거두는 일까지 기계를 일체 쓰지 않는다.
농사가 주업이 아닌 필자와 달리 농민들의 모든 농사일은 대부분 기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게다가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고 고령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소수의 농부가 경작하는 면적은 매우 넓다. 이들은 1년 내내 거의 트랙터 등 기계의 운전대를 붙잡고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수확 철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조금이라도 많은 작업을 하기 위해 1분 1초를 아끼고 있다. 이 상황은 결국 더 효율적인 기계를 필요로 하게 되며 농민들은 그것의 구입을 위한 융자를 신청하려고 농협을 찾게 된다. 농가의 넓은 창고는 고가의 기계들로 채워져 있고 그에 따른 빚은 계속 늘고 있다.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이전부터 도구를 사용해왔고 기술 개발과 함께 진화해 온 것은 분명하다. 이제 기계는 과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도너 해러웨이가 선언한 ‘반려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새로운 기계를 만들지만 기계도 역시 인간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관계인 것이다. 기계란 단지 하나의 도구를 넘어 인류의 확장된 신체와 같은 것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른 지금 인간은 자신의 의도대로 기계와 기술을 제어하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기계에 철저히 구속돼 있다.
이런 점에서 농업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떠난 텅 빈 농촌에서 더 이상 울력을 통한 노동은 불가능하다. 아니 설령 많은 사람이 있다 해도 울력보다는 기계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인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식량 생산을 위해 기술 개발은 피할 수 없다. 이 역시 인간과 기술이 공진화하는 하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류가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 바로 기후 위기다. 우리는 산업화 이후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지구의 온도를 끌어올렸으며 인류의 멸종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농업 역시 ‘석유농’이라 불릴 만큼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IPCC에 의하면 전 세계 농지 사용에 의한 온난화 비율은 12%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는 단지 기계사용뿐만 아니라 비료, 살충제나 스마트 팜 운영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 사상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잘 알려진 에른스트 슈마허는 1970년대에 자기 파괴로 치닫는 인류를 구제할 방법으로 ‘적정 기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슈마허는 자본집약적이고 에너지 의존 비율이 높은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체계와 대비하여, 적정기술을 대중에 의한 기술이라 규정했으며, 이 기술은 분산화를 유도하여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할 수 있고 희소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50년 전 슈마허의 통찰을 실현하는 방식의 기술개발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거대 기계에 억눌리고 화학물질로 죽어가는 땅을 살림으로써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길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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