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에는 어린 왕자와 여우가 주고받는 대화가 나온다. 여우가 말을 건넨다. “제발… 나를 길들여다오.” 어린 왕자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니?” 여우가 대답한다.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주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예사로 나오는 때. 아는 이가 확진됐다고 해도 그러려니 여길 만큼 대유행을 지나는 중이다. 끝이 보일 거라는 간절함으로 무던히 견뎌낼 때 여우가 한 말을 떠올린다.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는 이 말처럼, 개인 행동반경을 축소하며 공동의 삶을 향해 대처해왔다.
마스크를 쓰던 초창기 불편을 기억할 것이다. 눈앞에서 아는 얼굴을 보고도 퍼뜩 알아보지 못했다. 눈 아래를 가려버린 얼굴은 낯설었다. 아는 이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도 했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기이한 세상이었다. 코로나 발발과 맞물려 입학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서로의 얼굴 보여주기도 했다잖은가. 공기를 맘껏 들이켜지 못해 숨이 답답했다. 소통의 부재와 거리두기로 사람 사이가 소원해졌다.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이 말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인내심으로 견디는 현시대에 던지는 말이다.
한 주에 한 번 가는 어느 공공기관에서 누군가의 인사를 받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분명 나를 알아보고 하는 인사다. 서로 마스크를 했지만 상대의 목소리는 나를 향했다. 혹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닐까. 긴가민가하며 인사한 사람을 바라보니 그쪽 시선이 내 눈에 닿아있다. 눈웃음까지 띠었다. 그제야 상대를 알아보고 눈 미소로 화답했다. 이제는 웃는 눈만으로도 교감하고, 갑갑하던 반쪽 이미지에도 익숙해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 적응해야 살아가는 현실 때문인지 용케 살아들 간다.
유치원 차를 기다리며 젊은 엄마들을 만난다. 눈 밝은 젊은 그들이 일쑤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 사람이 맞나 하고 살피기만 하다가 인사를 받기만 했다. 어쩌면 이런 어른을 두고 쌀쌀맞고 아는 체도 안 한다고 하지는 않았을까. 몇 번이나 그들 얼굴 윤곽을 살피고야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마스크라는 가로막 때문에 소통이 반 박자 늦는 답답함도 참아내고 익숙해진다.
코로나19는 앨빈 토플러가 일찌감치 말한 ‘미래 충격’이었다. 미래의 문화 속으로 갑자기 진입할 때 느끼는 혼란을 뜻하는 미래 충격, 이는 지구촌을 덮친 코로나 사태에 꼭 들어맞는 말이었다.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는 더욱 빠른 속도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간 얼마나 혼란스러웠으며 두려워했는가. 공포에 떨던 심리로 예측하지 못했던 현실에도 적응해 가는 인류가 대견하다.
이런 혼돈의 시대를 내다보고 쓴 듯, ‘혼돈의 해독제’를 부제로 내 건 책이 있다. 조던 피터슨이 쓴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다. 토론토대학 학생이 뽑은 ‘내 인생을 바꾼 교수’에 뽑히기도 한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말한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고. 이는 경청하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책은 팬데믹 이전에 썼으며 코로나와는 관련 없다. 저자는 적의 성공에서 배우고 적의 비판도 경청하라고 피력하지만, 이런 메시지를 독자 입장으로 해석한다. 말에 귀 막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유익한 내용을 들려줄 사람으로 받아들이자고.
많은 사람이 탄 지하철에서 수다 떠는 이를 간혹 본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대화에 심취한다. 코로나로 막혔던 말의 보가 견디다 못해 터졌으니 무슨 수로 막겠는가. 이들에게 보내던 눈짓도 거두려고 한다. 그들의 말은 곧 내가 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기에. 피터슨 교수가 제시한 저 문장을 염두에 두고 들어주는 행위도 보람되지 아니하랴.
바이러스와 투쟁하며 공공의 삶을 산 지난 두 해. 뭐니해도, 연초록 싹을 막 틔우고 세상에 가지를 뻗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진정 못 할 짓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에 길들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