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주도의 경제성장·발전전략은 이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1997년 4월 당시 강경식 부총리는 부산상공회의소 강연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중앙이 아닌 지방 중심의 경제 활성화와 경제구조 개혁을 목소리 높여 강조했다. 실제 정부는 한 달여 뒤 그에 대한 종합정책을 내놨다. 인력 자금 결정권 정보 모두가 서울에 쏠린 중앙집권적 구조와 수도권 과밀화로는 지역경제 살리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렸다.

그로부터 25년 세월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지 싶다. 오히려 사업비 국고 지원과 성과 위주 예산배정 등을 명분으로 지방자치단체 간 유치경쟁만 부추겼다. 중앙이 각종 권한을 틀어쥐고 지역에는 시혜 베풀듯이 했으니, 자립기반이 갖춰질리 만무하다. 되레 수도권 외연 확장과 불균형의 골만 깊어졌다.

국책기관인 산업연구원이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그런 실태가 새삼 드러났다. 요지는 이렇다. 전국 6개 초광역권의 2020년 ‘지역성장잠재력 종합지수’를 평가한 결과, 수도권·충청권과 그 외 초광역권 사이의 격차가 확연하고 더욱 확대됐다는 얘기다. 수도권·충청권이 각각 1, 2위로 국가 성장을 주도하는데 비해 국내 주력 제조업의 집적지역인 동남권은 6위를 기록해 성장잠재력 저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5위를 이어오다 결국 최하위로 떨어진 것이다. 이 종합지수는 지역 성장 성과와 기업·산업 인적자본 지역혁신 지역사회 역량 등 6대 지표를 합친 것으로, 부산 울산 경남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부산은 17개 광역시·도별 평가에서 16위로, 최하위(대구)를 겨우 면했다. 2010년 16위, 2015년 15위에서 다시 내려앉았다. 이쯤 되면 동남권 중추도시, 제2의 도시 같은 명칭이 낯뜨겁고 참담하다. 반면 서울과 대전은 1~3위를 유지해 오고, 2020년에는 세종이 2위로 뛰어올랐다. 이런 점에서 지식서비스산업과 연구개발, 행정 등의 중추도시 기능이 확실한 권역이 높은 성장잠재력을 보유한다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이대로 가면 균형발전은커녕 지역소멸만 빨라진다. 산업연 보고서 내용처럼 동남권의 역량 강화는 국가산업에서도 중요한 과제다. 따라서 부울경특별연합(메가시티)의 역할이 막중하다. 대통령직인수위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은 “균형발전 없이는 국가 미래가 없다”고 했고, 메가시티 중요성도 역설했다. 어제는 균형발전 비전 및 국정과제를 내놨다. 문제는 역시 백 마디 말보다 실천이다. 차기 정부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