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코로나에 걸릴 줄은 몰랐다. 늘 조심하고 건강 관리를 잘 해왔는데 가족이 걸리니 원플러스원이었다. 잘 버텨오다 정점을 찍고 내려갈 무렵에 걸리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일주일 동안 격리를 했는데 정말 답답했다. 타의에 의한 강제 격리는 몹시 힘들었다. 말이 격리지 감옥살이나 다름없었다. 방안에 갇혀 있으면 하루가 한 달 같았고, 고작 일주일이 아니라 몇 달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후유증 없이 쉽게 나아서 다행이었다.

어떤 사람은 격리가 풀리기만 하면 가까운 편의점에 달려가서 이것저것 다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막상 격리가 풀려서 가보았더니 살 게 별로 없었다고.

사람은 자유 의지로 살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남이 간섭하면 좋아하던 일조차도 싫어진다. ‘하던 지랄도 멍석 펴주면 안 한다’는 속담도 그래서 나오지 않았을까! 마스크 역시 내가 쓰고 싶어야 덜 불편하지 법으로 정해서 쓰게 되면 큰 고역이다.

글을 쓰는 사람도 코로나로 묶여 있는 동안에는 대체로 좋은 작품을 많이 쓰지 못했다. 각종 공모전에 응모작이 줄었는가 하면 당선작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지만 줄곧 갇혀 있으면 감성이 죽어버린다. 사람을 만나 새로운 자극을 받거나 여행을 떠나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많은 것을 보고 들어야 영감이 솟아 나올 텐데 집콕만 하고 있으면 햇볕을 못 쬔 식물처럼 상상력이 시들어버린다. 갇혀 있는 동안에는 울화가 쌓여 호르몬이 부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글 작업도 되지 않았다.

이제 거리두기가 풀렸고 해외여행까지 할 수 있게 돼 갇혀 있던 욕구가 화산처럼 분출될 것이다. 봇물 터지듯 너도나도 외국으로 떠나거나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과 모임을 하기도 할 테고, 극장이나 카페, 운동장을 찾는 발길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 것이고, 어디든지 발길 닿는 대로 실컷 돌아다니기도 하리라. 오래 봉쇄되어 있었으니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해방감을 만끽하며 무엇이든 실컷 해볼 일이다.

강제 격리는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역마살이 들린 듯 돌아다니기만 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가끔 칩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하거나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칩거는 자발적인 격리이기 때문에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 칩거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되었다면 고마운 구속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칩거(蟄居)라는 말은 벌레가 겨울잠을 자기 위해 땅속에 숨는 것을 뜻한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의식이다. 밤에 잠을 자는 것도 일종의 칩거로 볼 수 있고, 단식원에 들어가 며칠 굶고 나오는 것이나 스님들이 수행하는 동안거나 하안거도 넓은 의미의 칩거다. 평소에 집에서는 긴 글을 쓰지 못하던 사람이 고시원이나 절에 들어가 스스로 세상과 단절한 뒤에 목표를 이루고 나오는 것도 칩거의 힘이다.

사람이나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칩거를 한다. 추운 겨울 동안 꽃눈을 줄기 속에 꽁꽁 숨겨두었다가 봄이 오면 만세를 부르듯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린다. 해마다 목련꽃이 필 무렵에는 목련 꽃차를 만든다. 꽃봉오리가 확 벌어지기 전에 따서 뜨거운 김에 30초 정도 살짝 찐다. 그런 다음에 꽃잎을 한 장씩 떼어내는데, 우리가 쓰는 마스크는 아무것도 아니다. 바깥에는 털외투가 있고 그것을 벗겨내면 꽃잎이 겹겹으로 꽁꽁 싸여 있다. 한 잎씩 정성들여 떼어내지 않으면 뭉그러져 버린다. 우리가 강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내복을 입고 겉옷에다 점퍼 외투 패딩까지 겹쳐 입는 것처럼 꽃봉오리도 여러 겹으로 싸서 자신을 철저히 보호한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칩거가 필요하다.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발적인 칩거를 해야만 한다. 글을 쓰기 위해 두문불출하거나 작곡 그림 아이디어 개발 등 창의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필수적이다. 물론 칩거만 계속하는 것보다는 여행과 만남을 적절하게 섞어가며 해야 더 좋은 효과가 나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