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갑자기 ‘제왕적 대통령’이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린다. 대통령 당선인이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 있으면 왜 제왕적 대통령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설명이 없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것도 집무실 이전 이유라는데 어느 국민이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은 왕과 같은 대통령이란 뜻이다. 왕처럼 모든 것을 마음대로 전횡하는 대통령이라는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왕은 정말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했는가? 청와대에서 근무한 과거 대통령들이 왕처럼 행동했는가? 이 두 의문에 대한 대답이 ‘그랬다’이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적절할 수도 있다. 대답이 ‘아니오’이면 이 용어를 언론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사용하기에는 맞지 않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통치한 왕은 많지 않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 봉상왕(재위 292∼300)과 조선 연산군(재위 1494∼1506)이 여기에 해당하는 왕일 것이다.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을 이런 왕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개국 공신과 외척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종이 숙청한 사람은 모두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사람이라 이들을 그대로 두고는 법치를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숙청했다. 이 결과 다음 세종(재위 1418∼1450)이 평화로운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중국 역사에서 자기 마음대로 전횡한 왕으로는 진시황(재위 서기전 246∼서기전 210) 수(隋)양제(재위 604∼618) 명 태조 주원장(재위 1368∼1398)을 들 수 있다. 진시황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여 전국시대를 마감했다.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제인 군현제를 도입한 황제지만 책을 불태우고 선비를 묻어버린 분서갱유(焚書坑儒) 등 자기 마음대로 정치했다. 수나라 양제는 신하들이 말려도 고구려 원정을 감행했으나 을지문덕 장군에게 대패하고 스스로 몰락을 자초했다. 명 태조 주원장은 명나라 개국 군주다. 황제 즉위 후 개국 공신들을 대부분 숙청하고 신하들을 노예처럼 부렸다.

제 마음 내키는 대로 나라를 다스린 왕들은 폭군으로 평가받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수양제는 신하에게 살해되었다. 봉상왕은 아들과 함께 자살했고, 연산군은 폐위되어 서인으로 유배지에서 죽었다. 진시황과 명 태조는 자신이 쌓은 공훈과 권위 때문에 횡사하지 않고 자연사했다. 그러나 진시황 사후 통일제국 진(秦)나라는 곧 망했고, 태조가 죽은 후 명나라는 조카와 삼촌 간에 황제 자리를 놓고 치열한 암투를 벌였다.

왕조 국가에서 대부분 왕은 그렇고 그런 왕들이었다. 제 마음대로 정치하는 폭군 숫자는 많지 않았다. 물론 폭군에 대비되는 현군(賢君)도 많지는 않았다. 조선왕조에서는 세종과 정조(재위 1777∼1800)를 현군으로 들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는 당(唐)나라 태종(재위 626∼649), 원(元)나라 세조(재위 1271∼1294), 청(淸)나라 강희제(재위 1661∼1722)가 현군일 것이다. 이들은 지성과 용기를 겸비했고 남을 배려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정치에서도 백성을 중히 여기고, 인재를 아끼고, 소통을 소중하게 여겼으며, 통합을 지향했다.

정부 수립 후 대통령 11명이 청와대에서 일했다. 이 중에서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을 자기 마음대로 정치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터가 나빠서 그렇게 되었을까? 누구도 증명할 수 없다. 대통령이 마음대로 정치해서 국민에게 원성을 받는 것은 지도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집무실 위치 탓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 차원에서 풍수가 논의된 사례는 조선왕조 초기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궁궐터를 잡을 때였다. 최종 결정은 무학대사의 풍수 이론이 아니고 자연적 여건을 고려한 정도전 의견을 따랐다. 풍수 이론이 믿을만한가?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풍수론(風水論)’과 ‘풍수집의(風水集義)’에서 풍수쟁이 후손이 영달하지 못한 예를 제시하는 등 풍수를 요망한 사기술이라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대통령 집무실과 거처는 나라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개인 선호에 따라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후 열흘 만에 일방적으로 집무실과 거처를 정할 일이 아니다. 먼저 법을 만들어야 한다. 절차를 정해 의견을 모으고, 집무실 이전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검토하고, 관련 예산을 편성해서 차근차근 집행하는 것이 순리다. 대통령 당선인이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다는 결정 자체가 제왕적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사 표시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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