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누더기라는 것을 실감하는 한동안이에요. 아니 꽤 오랫동안인가요. 말이 이렇게 누추하다니요, 이렇게 경직되다니요. 실망이에요. 말은 또 얼마나 자주 말문이 막히는 벽창호인지요. 말은 또 얼마나 교묘하고 매끄러운 뺀질이인지요. 말에 구멍이 많은 건 알고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말은 어디에서 그 빛과 유머와 부드러움을 분실한 걸까요. 인간문명은 말로 이루어진 건축물이지요. 말이 누더기가 되면 인간문명이 걸레조각이 되지요. 말이 썩으면 인간문명이 폐허가 되지요. 말이 썩으면 영혼이 썩지요. 말이 피 흘리면 세계가 피 흘리지요. 말이 농담을 잃으면 두려움이 쳐들어오고요. 말이 빛을 잃으면 우주가 캄캄해지고요.

반면교사 노릇을 하려고 말을 저렇게 쓰는 건가. 자신을 기꺼이 말의 제단의 제물로 바치는 건가. 말을 대하는 태도에서 많은 것이 흘러나와요. 언어를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보여주지요. 불행히도 말은 주기적으로 스스로 말을 상처 입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 같아요. 말은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요. 교묘하게 꾸미는 아첨의 말은 예나 지금이나 귀를 썩게 하지요. 사회생활은 일정량의 윤활제를 언어에 요구하지요. 사회생활 좀 할 줄 아네. 이 말이 백 프로 칭찬은 아니지요. 말이 너무 달콤하면 해로워요.

말이 욕망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워요. 말이 비굴한 욕망에 종사할 때 왜 그토록 야비하고 사나워지는지요. 왜 그토록 헛된 약속을 남발하는지요. 한 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 동원되는 말은 자신의 귀를 막아두고 입을 열지요. 말의 칼을 휘두르고 말의 화살을 날리지요. 말의 화살은 상대의 눈을 겨냥하지만 자기 눈을 명중시키고요. 욕망의 화살 끝에 발린 맹독이 말의 눈을 멀게 하지요. 맹목이 된 말은 유리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요. 자신의 말이 자신을 가두는 덫이 되지요. 말에 더 크게 다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지요. 그 과정에서 언어가 상하지요. 날카로운 말의 파편은 무한증식하는 바이러스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감염시키지요.

말이 편을 좋아한다니, 또 실망이에요. 자기편일 때 말은 귀가 썩도록 눈이 멀도록 달콤하고 부드러워요. 자기편이 아니다 싶으면 말은 순식간에 쓰고 거칠게 얼굴을 바꾸어요. 말은 천 개의 가면을 가졌을까요. 말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말은 편향된 생각의 노예로 전락하고 싶은 걸까요. 말의 카오스에서도 춤추는 별이 태어날까요. 말을 중계하는 말은 또 얼마나 기울어 있는지요. 말을 유통시키는 가게가 공공연히 한 편의 깐부임을 내세우고. 말이 진실을 은폐하는데 부역한다는 의심이 루머이길 바라요. 역사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말들이 넘쳐나요.

사실 말에게 무슨 죄가 있겠어요. 언어의 빛나는 비늘에 오물을 덮어씌우고, 언어의 내장에 부패한 맹독성 욕망과 중독성 마약을 쑤셔 넣는 사람이 문제지요. 탄력 있고 붉게 빛나기를 멈춘 언어의 아가미가 창백해요. 말을 이렇게 숨 막히게 만든 사람! 이 손가락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가리킬 수 있을까요. 제 심장을 가리킬 수밖에요. 시를 쓰는 사람은 말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하지요. 때로 시는 말을 파괴하고 해체하지만, 그건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지요. 서로 이기겠다고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공리주의가 낸 말의 상처가 깊어졌어요. 언어의 벗겨진 비늘에 약을 바르고 벌어진 지느러미를 봉합해야 해요. 말이 더 다치지 않도록 지키는 전사의 역할을 시가 할 수 있기 바라요. 궁극적 승리는 건강한 언어의 몫이어야 하지요.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의 몫이어야 하지요.

오래된 미래, 말 역시 후세로부터 빌려 쓰는 재화이지요. 언어는 인간이 삼가고 아끼고 잘 쓰고 물려줘야 할 최고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지요. 언어가 우주의 궁극의 주인이지요. 인간과 말은 서로를 환대하고 귀히 여겨야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