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는 ‘주권이 주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목적은 오로지 주권자인 주민의 안정된 삶과 안전을 위함이다.

전대미문의 혼돈 시대를 맞아 오는 6월 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데 지역구 못지않게 비례대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은 지역구 대표로 나서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나 전문직 출신을 의회에 진출시키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한때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거액의 공천 헌금을 내고 국회의원 배지를 샀다고 해서 ‘전국구’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지금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국민 생활에 필요한 각계 전문가로 구성되는 추세다.

현대는 전문가 사회이고, 전문가가 존중받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전환)’ 추세에 맞춰 주민의 목소리와 요구는 세분되고 다양해지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여파로 전 인류가 2년 넘게 마스크를 쓰고도 감염될까 봐 서로를 불신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하고 있다.

광역지방의회 비례대표를 선정함에 있어 예전처럼 배려를 운운하며 구색 맞추기나 나눠주기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여론이 학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독일 보훔대의 한 교수는 “지역사회를 위해 자신의 전문지식과 숙달된 능력이 지방의회를 통해 쓰임을 받는다면 그것은 가장 소중한 순기능적 봉사”라고 말한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도 최근 “전문 경험이 가장 소중한 가치이고 이를 지키려면 전문가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부산시의회와 경남도의회에는 각각 5명, 6명의 비례대표 의원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노동계 또는 장애인단체 출신, 여성 당직자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같은 비례대표 구성은 급변하는 시대에 걸맞은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특정 정당의 지지 세력이나 측근이 비례대표로 선출된 경우 비례대표제도의 취지마저 왜곡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시·도민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하우가 축적되고 경험과 경륜을 갖춘 전문가(의료 보건 소방 법률 회계 등)를 뽑아 지방의원의 자질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각계각층의 다양한 민심을 세심하게 담을 수 있다.

이번 6·1지방선거부터 비례대표를 소수라도 전문직으로 충당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 지방의회도 지방자치 부활 32주년을 맞아 이런 숙제를 적극적으로 풀어야 풀뿌리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다. 전문지식과 경륜을 갖춘 전문가가 지방의회에 진출해 의정활동을 통해 주권자인 시·도민에게 제대로 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지방의회의 인적 쇄신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선진국형 지방자치로 다가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지방의원 한 명이라도 이 시대의 민심과 지역 정서를 대변한다면 지역구 의원 몇 명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