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 여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1977년 유엔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했으며 한국에선 2018년 여성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 공식 지정됐습니다.

여자 중학교 1학년 시절, 부반장이었던 저는 반장과 함께 월 1회 있던 학생 임원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교내 환경 미화, 학생 준수 사항에 대한 안건을 자유롭게 발의 후 거수투표를 통해 과반수가 되면 학생 수칙으로 인정, 어길 시 처벌도 가능한 회의였습니다. 커트 머리의 3학년 선배가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첫째 주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생활 검열을 없앴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증 검사는 이해가 되지만 빗, 거울, 휴대용 휴지, 반짇고리 검사는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 선배를 직시하며 외모와 품행이 방정한 여학생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선배가 되물었습니다. 왜요? 남중, 남고에서는 안 하던데요. 선생님과 선배의 얼굴이 동시에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다른 안건. 선생님은 손을 내저었습니다. 옆 반 반장이 손을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치마 입는 날로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여중을 다니는 여학생인데 너무 치마를 안 입는 것 같습니다. 3학년 선배는 뜨악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조례 시간의 생활 검열은 계속됐고 복장 검사(월요일은 치마 입는 날)가 추가됐습니다.

여고 입학 한 달 전, 예비 소집이 있었습니다. 교복자율화 시대가 끝나 많은 학교가 새 교복을 선정하느라 분주할 때였습니다. 예비 1학년들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교감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단상에 놓인 옷걸이에는 자줏빛 체크무늬가 들어간 겨울 교복이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여고이지만 교복 하의를 치마와 바지 중에 선택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학생들 생각은 어때요? 학생들은 환호했고 교복 바지는 3년 내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불합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은 이들-3학년 선배와 교감 선생님 같은-의 목소리와 의지로 세상은 조금씩 변해 왔습니다. 예전에는 기술과 가정 두 과목으로 나눠 남녀가 따로 배웠던 교과를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기술과 가정으로 함께 배웁니다. 남자가 전등을 갈고 여자는 바느질을 하고. 익숙할 뿐 당연하지는 않습니다.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남학교에서도 가정을, 여학교에서도 기술을 가르쳤다면 여자가 못을 박고 남자가 밥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겠지요. ‘언니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를 읽었습니다. 미국 여성 메이커 운동의 선봉 ‘걸스 개라지(Girls Garage)’의 활동과 철학을 담은 책입니다. 물이 새는 변기를 고쳐야 할 때, 벽의 구멍을 메워야 할 때, 차량을 정비할 때 필요한 공구와 쓰임에 대한 조언과 노하우-여자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여자라서 못 배웠던-가 담겨 있어 실용적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최근 논쟁이 되는 일곱 글자입니다. 대안 없이 폐지부터 외칩니다. 젠더 이슈로 부각되어 성혐오적 양성 갈등을 더 조장하고 말았습니다. 폐지하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양성평등, 성인지 감수성의 강화, 데이트 폭력 근절, 성범죄 예방을 위한 모든 정책이 뿌리를 단단히 내려 여성가족부라는 우산이 없어도 견뎌낼 수 있다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흡수 통합될 수도 있겠지요. 시대적 요구와 필요성을 극복해 더는 여성의 날로 기념하지 않아도, 여성가족부가 존재하지 않아도 양성 모두 평등한 세상 그 역사를 기다립니다. 지젤 알리미가 ‘여성의 대의’에서 말했듯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