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심리학자 아론 라자르는 역사적 정치적 개인적 사례를 분석해 사과에 대한 학문적 이론을 최초로 정립, ‘사과(謝過)에 대하여’란 책을 썼다. 그는 “사람들은 사과를 나약함의 상징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과의 행위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갈등과 위기를 해소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사과이며 더 이상 약자의 언어가 아니라 담대한 힘을 요구하는 ‘리더의 언어’라고 강조한다.

정치인과 사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 버락 오마바 전 미 대통령은 사과를 리더의 언어로 승화시킨 인물로 꼽힌다. 그는 위기 때마다 적극적으로 사과했고 대중은 그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2008년 5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오바마가 크라이슬러 자동차 생산 공장을 방문했을 때 질문을 하려던 여기자에게 ‘스위티(sweetie)’라는 말을 써 논란이 됐다. 스위티는 애인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쓰는 말로 성희롱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오바마는 직접 여기자에게 전화를 하고 이런 표현을 쓴 것을 사과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좋은 사과의 조건으로 잘못된 행위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을 솔직히 드러내야 한다고 제시한다. 보상과 재발 방지책을 내놓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배우자 김혜경 씨의 사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고 ‘과잉 의전’과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김 씨는 “저의 부족함으로 생긴 일들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제가 져야 할 책임을 마땅히 지겠다”고 말했다. 이 일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로 근무할 때 이 후보 측근인 5급 공무원 배모 씨의 지시에 따라 7급 공무원이던 A 씨가 김 씨의 약 대리처방, 음식배달 등을 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법인카드의 사적 유용의혹도 나왔다. 김 씨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사과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수사와 감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구체적인 해명을 피해가면서 알맹이 없는 사과를 한 셈이다. A 씨 역시 대리인을 통해 “김 씨는 중요한 질문, 꼭 답해야 하는 질문에 정확하게 답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어로 ‘사과(apology)’는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그리스어 ‘아폴로지아(apologia)’에서 유래했다. 두루뭉술한 사과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 마련이다. 사과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