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11일 시청 의전실에서 부산환경공단을 비롯해 부산문화회관, 영화의전당, 부산문화재단 등 4개 공공기관장들에게 임명장을 줬다. 이날 함께 출발한 4인의 기관장 중 유일하게 부산시의회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친 안종일 부산환경공단 이사장보다 나머지 3명에 시선이 더 쏠렸다. 부산문화의 핵심 축인 3대 공공기관 수장들이 같은 날 임기를 시작한 것은 전례가 없었던 까닭이다. 새해 문화계의 이목이 집중된 ‘화제’다. 어쨌든 부산문화회관 이정필, 영화의전당 김진해, 부산문화재단 이미연 대표가 펼칠 문화행정은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전개됐으면 한다.

이들 3대 문화기관 대표는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리를 꿰찼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누구나 인생 역정을 되짚어보면 이런저런 논란거리가 없을 수 없는 처지라, 본인도 모르게 불거질 구설을 겪지 않은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성과’를 일구는 것으로 답해야 한다. 여기서 부산문화회관, 영화의전당, 부산문화재단 등 3대 공공기관의 역사와 위상을 따져보는 것도 그 나름 의미가 있겠다. 해당 기관의 가치를 적극 살려달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부산에 새 바람을 불게 하는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기대한다는 시민 바람을 전하고 싶은 게다.

2017년 재단법인으로 공식 출범한 부산문화회관은 부산의 대표 공연장 ‘부산문화회관’과 ‘부산시민회관’을 통합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이 중 ‘부산시민회관’은 지금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공공문예회관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1973년 개관 뒤 척박한 부산의 공연문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공연 종사자는 물론 향유층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시설 확충은 불가피했다. ‘부산시민회관’이 문을 연 지 10년 만인 1983년 ‘부산문화회관’이 착공된 이유다. 1988년 대극장 준공을 시작으로 1993년까지 중극장, 클래식과 어린이 전용극장 등 전관을 개관한 ‘부산문화회관’은 공연문화 중심지가 됐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부산시립교향악단을 비롯해 시립합창단과 무용단, 국악관현악단, 극단, 청소년교향악단을 아우르는 ‘부산시립예술단’까지 관장하는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이 문화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2011년 개관한 영화의전당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성공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공공시설이다. “부산에서 무슨 영화제냐.” 서울 충무로 중심의 영화계 인사들의 걱정 반, 비아냥 반이 섞인 시선을 딛고 1996년 닻을 올린 BIFF가 흥행을 거듭했다. 결국 2001년 영화인들과 부산언론에서 전용관 건립 당위성을 제기할 정도였다. 영화제 출범 이후 딱 10년 만에 결실을 본 영화의전당은 수도권 위주의 문화 흐름에 다양성의 가치를 일깨워준 상징 건물이다. 건물 자체도 예술품으로 축구장 1.5배 크기인 가로 162.53ｍ, 세로 60.8m 규모의 초대형 지붕인 빅 루프가 세계 최대 캔틸레버 지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부산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 우뚝 선 BIFF를 상징하는 영화의전당은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녔다. 이를 문화산업 분야 등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영화의전당 대표를 비롯한 운영진의 어깨가 무겁다.

2009년 창립한 부산문화재단은 관 주도로 이뤄졌던 문화 지원 패러다임이 민간 주도형으로 바뀌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는 공공조직이다. 경기문화재단이 1997년 전국 최초로 설립된 이후 부산에도 민간이 꾸리는 공적 단체가 필요하다는 문화계 인사들의 요구로 결실을 본 부산문화재단은 문화의 지역 분권과 부산 특유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다. 수도권 문화재단보다 시작은 늦었지만, 장르별로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인 문화 예술 발전’을 위한 창작 기반 확충과 함께 각종 지원 사업을 적기에 진행해 지역문화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것이 부산문화재단 측의 자평이다.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 통합과 아시아 청소년 아트 캠프 등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3대 문화공공기관 수장들이 사상 처음으로 한꺼번에 등장한 ‘화제성 사건’을 접하고 해당 기관의 탄생 과정과 현 위상을 짚어본 이유가 있다. 신임 대표들이 기관별로 구성원 간 내부 갈등 수습 등 우선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쌓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각 기관의 가치를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문화를 풍요롭게 할 ‘제대로 된 성과’를 내놓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 모든 짐을 짊어질 새 대표들의 당찬 실행의지를 바란다. 과거 활동을 인정받아 기관장 자리에 오른 것에 만족하지 말고 미래 평가를 위해 늘 긴장할 필요가 있다. 영광스러운 취임 순간보다 자리에서 내려올 때 더 당당한 전통을 마련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