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주’라는 필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함은 누구나 안다. 이 중에서 ‘주(住)’는 앞의 두 개보다는 시급함이 덜한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집이 없는 삶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유목민도 천막을 치고 노숙자도 최소한 역전에 머문다. 심지어 야외에서 살아가더라도 땅을 파고 낙엽으로 침구를 만든다. 거주를 포기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아니, 죽은 자도 무덤이라는 집을 필요로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집은 심지어 농촌까지도 아파트 일색이다. 특히 1970년대 이래 자리 잡은 아파트 단지는 가장 확실한 재산증식의 수단이자 사회적 차별화의 상징이 되어왔다. 역세권의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려는 욕망은 그 어떤 지고의 가치에 의해서도 잠재울 수 없다. 역사적, 인간학적, 환경적 고려 따위는 아예 배제된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표현을 빌면,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지리학에 저항하는 도시’다.

아파트는 실은 서구의 유토피아적 사회이념의 산물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서민과 노동자의 주거가 위협받던 시절에 주로 진보적 계열의 건설관료와 건축가들이 고안해낸 주거형태였다. 공익형 임대주택으로서의 아파트는 이른바 모더니즘 건축의 이상을 구현하는 주거형태였다. 이에 따르면, 건축이란 모름지기 특권층의 수구적 취향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생활에 이바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합리화 및 표준화되어 효율적으로 기능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유용하도록 대량화되어야 마땅했다. 또한 형태면에서도 간결하고 개방적이며 구태의연하지 않아야 했다. 현재 대한민국 아파트 단지의 현실과는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먼 발상이다.

순전한 상품이 된 한국의 아파트는 서구식 개인주의와도 친연성이 없다. 아파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생활의 효율성보다도 타인의 이목과 사회관계에 대한 기대감이다. ‘어떻게’가 아니라 ‘어디에’가 내 삶의 의미와 수준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통속적 욕망을 가장 강력히 부추겨온 세력이 바로 국가다. 국가는 투기열을 억제하기는커녕 스스로 투기에 앞장섰다. 장기임대정책 등 저소득층을 사회적으로 보호하는 일은 늘 후순위였다. 서울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간 아파트 단지들은 정부가 재벌과 결탁하여 일방적으로 추진한 한국형 발전모델의 표상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주민들의 욕망도 한몫했다. 선분양제도와 주택청약제도 등이 선사하는 주택 로또의 환상에 온 국민이 현혹당했다. 맨땅 위에 불뚝 솟아오른 아파트단지야말로 이 땅의 바벨탑이다.

과연 우리는 안락하지만 훨씬 피폐해진 우리네 주거생활에 대해 어떠한 대안을 논할 수 있을까?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1951년도 에세이 ‘짓기, 거주하기, 사유하기’는 이러한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헌이다. 이 글에서 거주하기(Wohnen)는 짓기(Bauen)와 생각하기(Denken) 사이에 위치한다. 짓기와 생각하기는 모두 거주하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짓기는 거주한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짓기 자체가 본원적으로 거주하기다. 거주한다 함은 죽음 앞에 유한한, 필멸의 인간이 지상에 체류하는 것이요, 이러한 체류를 위해 마땅히 필요한 보살핌이 바로 짓기이다. 건축물은 물리적인 ‘공간’ 속에 지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공간적으로 구획’함으로써 의미로운 ‘장소’를 창출한다. 한마디로 짓기란 ‘거주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 고명한 철학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 부족이 만연하던 시절에 “거주의 본질을 사유할 것”을 촉구했다. 그가 볼 때는 단순히 주택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거주의 본질을 잊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는 무작정 집을 짓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제대로 짓고, 짓는 것에 대해 숙고하라”고, 바로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거주라고 충고한다.

하이데거의 신선놀음 같은 주장은 우리에게 명확한 대안을 제시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현재 우리의 주거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무취미하고 동어반복적이며 폐쇄적인 아파트 단지는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그것이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생활방식을 대변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서구 아파트의 본령인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건축적으로도 이렇다 할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 건축가들은 대체로 아파트 건설을 ‘업자’의 영역으로 치부한다. 어차피 공무원과 대기업이 건설 시행을 좌지우지하는 마당에 건축가가 역량을 발휘할 여지는 실제로 별로 없다. 그렇지만 집을 짓는 일이야말로 건축 본연의 책무가 아닌가? 안락한 교외가 아니라 번잡한 시내의 아파트단지에서 자신의 철학과 역량을 십분 발휘해볼 건축가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