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부산 중구에 사는 장년층 독거 남성이 “많은 고생으로 삶의 의욕과 식사도 어려운 상황에서 1년간 구청 선생님들을 만나 참 많은 걸 배우고 좋은 경험을 했다. 정신적으로 모든 면에서 좋아졌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부산 중구는 서비스디자인 방법으로 ‘뉴 스타트 행복한 밥 한 끼 생활전환 프로젝트’를 진행, 저소득 독거 중장년층들과 마을 공동부엌을 만들고 함께 식사를 준비해서 나누는 공공서비스모델을 디자인했다.

그 결과는 사회적 고립가구의 생활전환이 이루어졌고,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에는 과거 도시락을 받던 분들이 마을 공동부엌에서 함께 도시락을 만들어 어려운 분들과 나누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부산은 공공서비스디자인으로 주민 문제를 해결하는 행정안전부의 ‘국민디자인단’에 참여해 2015년부터 지금까지 100여 건의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서구의 ‘내일을 꿈꾸는 비석마을’, 수영구의 ‘모두의 광안리 해변 조성’, 영도구의 ‘가치가치 하우스’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시민의 시각에서 해결하는 정책서비스 모델 디자인 성과는 행안부의 국민디자인 성과 공유대회에서 대상 1회, 우수상 5회 등의 결과로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산의 역량은 어디에 있을까? 부산은 한국전쟁의 마지막 교두보로, 1000일간 위기의 대한민국을 품고 임시수도로서 회복을 위한 발판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당시 부산 인구(40만 명)의 2.5배가 넘는 전국 각 지역의 피란민을 포용하며, 2020년 기준 세계 경제력 9위의 대한민국을 잉태하는 기회의 거점을 제공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회복시키고, 포용하는 부산의 근대사는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공존할 수 있는 도시의 역량을 준비해온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UN군 묘지가 1951년에 조성되고, 16개 국가의 용사들 2300명이 잠든 UN기념공원이 있는 부산은 세계적으로 포용과 기회의 리더십을 갖춘 도시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 또한 그동안 부산이 축적한 포용디자인 역량을 지난 7년간 국민디자인단 정책에 참여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량을 글로벌 사회의 모범이 되는 미래 부산사회를 디자인하는 과정으로 연결하는 것이 향후 우리의 중요한 과제다.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디자인 수요는 2015년 서비스디자인을 기준으로 공공서비스부분이 49%로 발표됐다. 즉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이 디자인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 중심도시인 동북부 뉴캐슬지역의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2007년 ‘Design of The Time’ 사회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에너지절감 서비스디자인, 이동수단 개선디자인, 주민참여 의료서비스 모델 디자인 등 공공기반, 환경, 서비스, 문화, 공유가치창출 등의 성과를 실증하고, 영국 사회 전반에서 공공서비스디자인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7년 전후로 공공디자인 개념을 정의하며, 서울시 등에서 공공디자인을 수행하고 있다. 주로 공공 공간, 공공 시설물, 공공 정보·매체, 옥외 광고물, 공공 정책 등에서 공급자가 주도하며 공공재의 품질을 향상하는 역할에 치중해 왔다. 다음 단계로 인간 삶의 질 향상과 구성사회의 진보를 위한 디자인 역할의 체계적인 정립의 시작은 2014년 행안부가 국민참여형 공공정책모델을 디자인하는 ‘국민디자인단’을 도입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정책의사결정 앞 단계에서 수요자인 국민과 디자이너가 구성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하거나 발전시키는 정책모델을 먼저 디자인하는 제도는 2016년 독일 IF 디자인어워드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2017년 행정절차법 시행령에 공공서비스디자인 방법을 활용한 정책개발이 명시되어 공공서비스디자인 활용의 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지역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체계와 생태계로 이어지며, 다양성을 수용하는 포용디자인으로 발전하고 있다. 포용디자인은 인종, 계층, 사회적 이념과 사상 등의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 편익을 위한 장애요소를 제거하는 유니버설디자인과 차이가 있고, 포용디자인은 인간과 사회·문화 그리고 기술의 이해와 지식이 역사 속에서 축적되는 시간과 경험 속에서 가능하다.

부산의 근대사와 시민의 포용, 창의적 문제해결 역량은 글로벌 리더십을 갖춘 디자인도시 부산으로 자리매김하는 준비가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가 감동하는 환경과 공공시스템, 그리고 부산을 경험하고 따라 하는 다양한 공공서비스디자인모델을 창출 하는 것은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의 기본조건이 돼야 한다.

부산디자인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