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중에만 마스크를 벗고 식사 중 대화는 금지입니다.”

입주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맡은 직원이 강조해서 말하기에 창작촌 특유의 활기가 예전보다 좀 못하겠구나, 짐작은 했다. 그날 저녁 내가 본 식사 풍경은 활기가 좀 못한 정도가 아니었다. 문인과 예술인 입주자 열서너 명이 투명한 아크릴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뚝뚝 떨어져 앉은 식당은 살벌하게 조용했다. 기존 입주자들은 얼어붙은 식당 분위기가 익숙한 듯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밥만 먹었다. 새로 입주한 작가들은 자다가 한 대 맞은 표정으로 주변을 두렷두렷 살폈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괜히 화들짝 놀라 눈을 깔았다.

점심 저녁 끼니때마다 대화단절의 시간을 견디는 가운데 창작촌의 한 달은 아무 일 없이 흘렀다. 무슨 일이 생길 까닭이 없었다. 내 경우, 누군가 젓가락으로 접시를 세게 긁거나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정적을 깨트릴 때 움찔움찔 놀라는 버릇이 생기긴 했다. 아, 또 하나 있다. 서로에게 삐친 사람처럼 제 밥그릇 비우자마자 후딱 나가버리니 입주자들 사이에 의도치 않은 거리감이라는 게 생겼다. 냉랭하기까지 한 거리감은 코로나 시국의 안전거리와는 성질이 달랐다. ‘거참, 입이 없나. 식당 바깥에서라도 서로 인사를 트고 친해지면 되지’ 싶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창작촌의 특성상 밥때와 산책하는 시간 외에는 다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는 터라 편하게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나도 예의 바른 묵례와 어색한 미소만 오갈 뿐이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함께하는 식사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은 알았지만, 딱딱한 분위기에서 따로 하는 식사가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막강할 줄은 몰랐다. 따져보면 당연한 거다. 같이 밥을 먹는 행위야말로 상대를 내 삶의 영역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내 삶의 일부를 나눈다는 의미 아닌가. 창작촌 입주자들은 같은 공간에서 식사했다뿐이지, 같이 식사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교사랄까. 그 덕분에 가족 혹은 공동체를 의미하는 단어가 왜 식구(食口)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 어디 나만 그랬을까. 서로 소 닭 보듯 하며 친구로도 동료작가로도 서로의 삶을 나누지 못한 채 한 달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새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작품 하나 붙잡고 몇 달씩, 때로는 몇 년을 혼자 싸우는 건 외롭고 고독하고 힘든 일이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을 만나 대화도 하고, 작업하며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위로하면서 흐트러지려는 열정의 심지를 돋우는 것, 그 또한 레지던시의 목적이 아닌가 말이다. 예술인 파트로 들어온 모 감독이 그나마 말마디가 오가는 흡연실에서 절규했다.

“두세 달을 함께 지냈는데 이름도 모르고 헤어질 판입니다. 코로나고 뭐고 일단 모임 한번 합시다.”

무거운 침묵과 냉랭한 거리 지키기의 긴장감을 이기지 못해 저 친구가 드디어 미쳤나, 하는 반응 대신 열렬한 호응이 터져 나왔다. 약속한 토요일 저녁, 이심전심으로 통한 입주자들이 휴게실로 모여들었다. 신묘하게도 코로나19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에 따라 허용된 사적 모임 제한 인원에 딱 맞게 모였다. 마실 것과 과자봉지와 귤을 늘어놓고 나자 풍성한 잔칫상에 둘러앉은 양 표정이 흥겨워졌다.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 모임 내내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 이거지. 이게 레지던시의 맛이지. 누군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공간에서 수십 끼의 밥을 먹었지만 타인으로 머물렀던 우리는 먹을 것을 나누고 말과 웃음을 나누면서 비로소 아는 사이가 되고 식구가 되었다.

언제가 됐든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는 날은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자신의 안전과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게 무서워 칩거하던 지인들을 다 부르고 싶다. 비대면이나 적절한 쾌적 거리도 때로 필요하지만, 사람은 함께 모여 부대끼는 가운데 정이 생기고 그리움이 싹튼다. 그러니 전화를 걸어 한껏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리라.

“우리 같이 밥 먹자. 이번엔 내가 살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