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23개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동남아항로 공동행위와 관련, 8000억 원 과징금 의결을 위한 공정거래위원회 전체회의 의결이 이달 초 개최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의 주장은 해운계가 부당한 운임담합을 해왔고, 이를 바로 잡아 공정한 거래질서를 수립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해운업의 공동행위는 1980년 해운법에 의해서 허용되어 왔고, 공정위도 1988년 이를 인정했다. 또 공정위는 122건의 신고절차에 대해 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지난 7월 적법하게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공정위의 결정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에 답해야 한다. 첫째, 동남아운항 선사의 공동행위로 선사들이 부당이익을 올렸는지, 공동행위로 인해 동남아항로의 운임이 부당하게 인상되었는지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 해운시장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단일시장으로 특정항로의 진출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지 않는 한 수익성이 좋은 시장으로 선박이 이동하기 때문에 특정항로에서 타 항로를 뛰어넘는 수익을 올릴 수 없는 구조이다. 오히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더 광범위한 항로 네트워크로 적시에 양질의 정기 운송서비스를 제공해달라는 화주의 요구가 높고, 국제운송 서비스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선사 간 협정을 통해 여러 선사가 협조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 불가결하다. 만약 선사 간 공동행위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약육강식의 원리가 작동하여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선사도 없고, 있더라도 매우 높은 운임을 요구하여 오늘날의 세계화를 통한 경제번영은 없었을 것이다. 비록 유럽연합(EU)이 2008년 이후 얼라이언스를 제외한 공동행위를 제한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해운국가에서 해운업의 공동행위를 허용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둘째, 공정위가 주장하는 122건의 불법행위가 인정되려면 지난 40여 년 동안 이를 합법이라고 인정해 온 해운법의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즉 정부의 잘못을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해운기업의 공동행위는 해운업 제29조 1항에 따라 이미 1980년 경제기획원에 ‘경쟁제한행위’ 등록을 한 사안으로, 공정거래법상으로도 이미 허용된 것이다. 해운업의 공동행위는 육상의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고, 해운법을 적용하여 그 법적 행위의 정당성을 이미 확립하고 있는바 동남아 정기선사의 공동행위에 문제가 있다면 주관부처인 해양수산부와 공정위가 우선 협의하고 조정해야 할 사안이다.
공정위는 자신들이 인정해 왔던 해운업계의 공동행위를 부정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우리의 경쟁국과 경쟁기업은 유리하게 하고, 한진해운 파탄으로 쪼그라든 우리의 해운지형을 지도상에서 아예 지워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다. 공정위의 주장대로 800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보유선박의 선가 총액이 4500억 원에 지나지 않는 동남아항로 선사들은 보유선박을 모두 매각해도 감당하지 못할 경영 위기에 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일 한중 항로까지 동일한 제재를 받게 될 것이고, 중국선사와 글로벌선사에게 시장을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와 한국해운은 뿌리째 흔들리게 될 우려가 있다.
주요 해운 선진국은 해운법상 공동행위를 허용하면서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의 경쟁국인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이 해운기업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공정위의 금번 조치는 국제적 법적공평성을 해치는 것이다. 국적선사뿐만 아니라 외국 선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시 해당국으로부터의 보복 조치 및 해당국 정부와의 외교분쟁 발생 가능성까지 예견되고, 이러한 상황은 결국 우리 국적 선사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와 동일한 처벌을 일본 중국 등 경쟁국 정부가 내리게 되면 우리 해운기업들이 설 땅은 아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공정위는 해운업의 국제적 법적 공평성을 심각하게 해치고 외교분쟁의 우려가 있는 금번 조사를 백지 철회할 것을 제안한다. 둘째, 해운기업의 공동행위의 불법 여부에 대한 조사 및 일차적인 판단은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에서 근거법인 해운법에 따라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셋째, 해운업의 공정거래정책과 법률에 관한 주요 국가의 사례연구 및 제도개선을 위한 범정부적인 조사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한다. 다시 한번 공정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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