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버스를 타는 기분은 상큼했다. 17번 버스 기사님이 친절했다. 부산역에 내려 일을 보고 도시철도로 갈아탔다. 사뿐 올라타며 새해 인사를 건넨다. ‘고마워요, 도시철도. 올해도 잘 부탁해’. 2022년 임인년 호랑이해가 되니 ‘기호지세(騎虎之勢)’란 말이 자주 들린다. 평소 잘 사귀어둔 덕에 마음이 통하게 된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 거침없이 내달리는 기세를 뜻한다. 많은 시민에게 도시철도와 버스는 내 삶을 지켜주고 전진을 도와줄 호랑이의 등이다.

1986년 고교에 들어가면서 매일 버스를 타게 됐고, 1989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버스 + 도시철도’ 신세를 졌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산에서 대중교통만 타고 다녔으니 나는 도시철도·버스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시민으로서 이 분야에 관한 글을 쓴다 해도 별다른 자료가 필요없다고 느낀다. 가족끼리 자료는 무슨….

부산 시내버스는 긴 세월 날로 발전해왔지만, 해결 못 한 게 있다. 승객이 버스에서 내리려 할 때 언제 쯤 자리에서 일어서는 게 좋은지에 관해 시민과 버스가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부산 시내버스 곳곳에는 이런 표지가 붙어 있다. “정류장에서 버스가 정차(붉은색과 노란색으로 글씨 강조)한 후 일어나 하차(검은색과 노란색으로 강조)하세요. 버스가 운행 중일 때는 위험. 제발~일어나지 마세요!!(붉은색으로 강조) 넘어집니다!!”

하지만 이 권고를 지키는 승객은 없다. 나부터 못 지킨다. 권고에 따랐다가, 내리는 손님이 없는 줄 알고 버스가 재빨리 출발해버려 내릴 곳에 못 내릴까 봐 무섭기 때문이다. 버스 기사가 무척 마음이 급한 듯한데, 괜히 느리게 움직였다가 폐를 끼칠까 염려도 한다. 그래선지 매번 미리 일어선다. 그러면 불안하다. 버스는 흔들리고, 정차할 때는 몸이 쏠리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승객이 앉거나 자세를 잡기 전에 출발하는 버스가 여전히 많다는 거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여차 하면 몸이 앞으로 쏟아질 것 같다.

이전과 비교하면 꽤 좋아진 건 사실이다. 거동이 편치 않은 어르신 승객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친절하게 기다리고 “어르신 자리에 앉으이소” “할머니, 미리 일나지 마이소”라고 안내하는 기사가 훨씬 많아졌다. 그런데도 버스 출퇴근(통학 포함) 경력 36년째에 접어든 나는 ‘인프라는 좋아지는데, 노인 인구가 많은 대도시 부산에서 왜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합의가 안 이뤄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산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도로 구조도 안 좋아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들었다. 이럴 때 곧잘 떠오르는 사례는 후쿠오카 시내버스다. 코로나19 탓에, 옆집 마실 가듯 가던 이웃 도시 후쿠오카에 다녀온 지도 꽤 되어 요즘 사정은 잘 모르지만 별로 변했을 것 같지는 않다. 정류장에 정확히 선 뒤에야 버스 출구 문(앞문이다)을 열고, 그런 뒤에야 승객은 일어서고, 차 안팎 상황을 다 확인한 뒤에야 출발하는 시스템은 부산 사람에겐 인상 깊었다. 요즘도 그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신호에 걸려 정차할 땐 아예 버스 시동을 껐다.

BRT(간선버스급행체계)가 확대되면서 변화가 생겼고 찬반 여론은 여전한데, 이에 관해서는 부산시가 면밀히 조사·평가해 개선책을 내놓을 일이라고 판단해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도시철도의 과제로는 ‘소리 정보’(열차 내 방송이나 역사 내 방송)를 더욱 신중하고도 알맞게,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우선 꼽겠다. 교통전문가가 아니라 날마다 도시철도를 타는 시민으로서 하는 제안임을 밝혀둔다. 부산교통공사가 매우 신중하게 도시철도의 소리 정보를 관리한다는 점은 피부로 느낀다. 얼마전부터 1호선 부산역에서 배우 고두심 씨의 안내와 피아니스트 전수연 씨의 곡을 틀어주는데, 나는 이 소리 정보가 아주 좋다. 내가 좋아하고 반기는 소리 정보는 더 있다.

그런데 크게 보면, 도시철도가 자칫하면 소리 정보 과잉의 현장이 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날마다 든다. 많은 시민과 여행객이 타는 도시철도가 정보 전달의 요지로 인식되면서 소리 정보의 각축장이 되어 가는 느낌도 있다. 그렇다 해도 전할 건 전해야 할 것이고, 잘 전달하면 시민에게 유익한 것은 맞다. 공익 관점에서 신중하고 엄밀하며 과학적인 태도·방식이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새해 벽두에 시시콜콜하게 여겨질 게 분명한 이야기를 한 것은 정책·행정의 전환 필요성 때문이다. 그 방향은 ‘시민 관점에서 세심한 접근’이다. 시민 참여 없이는 정책·행정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도 말하고 싶었다. 시민 관심·참여가 높아질 때, 버스에서 내리려면 언제 일어설지에 관한 합의를 우리는 비로소 이룰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르신과 어린이 승객이 다치거나 불안해할 확률은 낮출 수 있다. 그런 도시가 좋은 도시다.

기획에디터 겸 기획탐사부장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