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도면 좋은 아빠 아냐?’ 우리 사회가 아빠들에게 요구하는 아주 협소하고도 미약한 부성애에 기대 나는 가끔 이런 도발을 한다. 아내는 이 말에 울화가 치민다고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데 엄마의 마음과 아빠의 마음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만은, 모성애와 부성애 간에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명백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엄마는 임신한 순간부터 모성애를 강요받는다. 아기에게 밀려 산모의 고통과 건강은 언제나 뒷전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음에도 아기에게 안 좋을까 ‘무통 주사’를 거부하는 산모도 있다. 부성애와 모성애의 이 어마어마한 틈새의 근거는 무엇일까. 꽤 오랜 시간 동안 여성과 남성의 뇌가 다르게 조직되었다는 가설과 이론들이 있었다. 뇌 구조의 차이로 인한 성별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아이 양육 방식의 차이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성 특이적 행동과 뇌의 연관성을 연구했던 하버드대학의 캐서린 듀락 교수는 2007년 페로몬 수용체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며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페로몬 수용체는 성별에 따른 사회적 행동 패턴에 영향을 준다. 일반적으로 암컷보다 수용체가 많은 수컷에서는 발현을 억제하고, 반대로 암컷에서는 발현을 촉진한 뒤 행동을 관찰했다. 수용체가 줄어든 수컷 쥐는 공격성이 사라지고 새끼를 쓰다듬는 전형적인 양육 행동을 보였다. 반면 수용체가 늘어난 암컷 쥐는 전과 달리 수컷의 전형적인 구애 행동을 보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 특이적 행동이 뒤바뀐 것이다. 이 연구는 남녀의 뇌가 서로 다르게 조직된 것이 아니라 활성 물질의 양에 따라 충분히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듀락 교수는 후속 연구를 통해 2018년 양육 행동을 결정하는 뇌의 신경회로를 밝히고, 이 회로는 남녀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뇌의 시상하부 바로 아래에 있는 ‘갈라닌’ 생성 뉴런은 양육의 동기부여적, 호르몬적, 사회적 행동 변화를 불러오는 회로를 구성한다. 갈라닌은 이들 회로를 제어하는 최상위 신경전달 물질이며, 양육을 껐다 켜는 스위치인 셈이다. 양육 행동을 하지 않는 수컷 쥐의 갈라닌 뉴런을 활성화하자 새끼를 쓰다듬는 양육 행동을 보였고, 갈라닌 뉴런을 불활성한 암컷 쥐는 양육 행동을 멈췄다.

듀락 교수 연구의 핵심은 양육 행동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갈라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결정되고, 이는 후천적으로 바뀔 수 있는 요인이다. 이러한 과학 발견이 지향하는 바는 훨씬 인간적이다. 듀락 교수는 본인의 연구가 “산후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산모를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상업적 활용도 가능하다. 뇌에서 갈라닌을 많이 생성할 수 있는 약물이나 갈라닌 뉴런을 활성화하는 치료법을 찾는다면, ‘독박육아’로 고통받는 전 세계 여성들을 통해 엄청난 판매를 기록할 것이다.

일례를 소개했지만, 학습과 행동에 남녀 차이가 있는지를 답하기는 쉽지 않다. 양성평등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관심이 높은 시대에 섣부른 대답은 양성 모두에게서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동물이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 결과를 도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세기 들어 페미니즘이 발전하고 여권신장의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남녀의 뇌 구조적 차이는 주로 사회문화적 환경과 문화 차이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뇌와 인지기능을 갖고 태어나지만, 성 역할에 맞는 학습 과정을 겪으면서 선택적 인지기능 발달로 뇌의 역할을 완성해 가는 유연성을 가진 셈이다.

우리 사회도 뇌처럼 좀 더 유연해지길 바란다. 남녀에 대한 배타적 혐오가 점점 극한으로 치닫는다.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내가 느끼는 이 사회의 차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최소한 두렵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맞벌이 부부의 육아에 대한 부담이 점점 더 가중되고 있다. 힘들면 적을 만드는 법이다. ‘후천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다.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은 있어도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