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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서점가에 영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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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왼쪽 아래, 나체의 여인이 소파에 누워 있다. 주렁주렁 열린 오렌지, 눈을 부라리는 두 마리 사자, 숲 속에서 피리를 부는 흑인 등 여인의 주변은 온통 정글이다. 여인은 도시의 소파에서 정글 꿈을 꾸고 있다. 하얀 보름달이 그 모습을 지켜본다.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1844~1910)가 세상을 떠난 해에 그린 ‘꿈’의 정경이다. 루소는 꿈의 화가다. 특히 정글 꿈을 많이 꿨다. 그가 남긴 180여 점의 작품 중 약 15%에 달하는 26점이 정글 그림이다. 이성과 문명에 물 들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과 야성에 대한 꿈이다. 그 꿈은 초현실주의, 입체파 등 현대 미술의 산파 구실을 했다. 추상회화의 창시자 칸딘스키는 “루소의 ‘위대한 리얼리즘’은 ‘위대한 추상’과 함께 현대 미술을 이끄는 두 축의 하나”라고 했다.

흥미로운 건 루소가 평생 정글 탐사는커녕 프랑스를 벗어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현대 미술에 큰 영감을 준 “순수한 원시인”으로 불릴 수 있었을까. 비평가들은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는 꿈과 상상력을 그 동인으로 본다. 파리의 식물원과 만국박람회의 동물학 갤러리 등은 그 꿈을 설계하는 소재였다. 루소는 “온실에 서서 이국 땅에서 건너온 이상한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꿈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시인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 로랑생을 그린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도 그런 꿈과 상상력의 소산이었다.

코로나19 시대, 루소의 ‘비대면 상상력’이 대안적 모델로 다가온다. 그 바람에 다수 국민이 공감한 것일까. 올해 국내 서점가를 주도한 독서 경향 또한 꿈과 상상력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는 지난 6일 발표한 ‘2021년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및 결산 자료’에서 도서시장의 흐름을 가장 잘 요약한 키워드로 ‘꿈’을 선정했다. 소설 ‘달라구트 꿈 백화점’이 판매량 종합 1위를 차지한 게 대표적인 예다. ‘하늘을 나는 꿈’ ‘성공하는 꿈’ 등 백화점에 온 사람들이 온갖 꿈을 사간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100만 부 넘게 팔렸다. 경제·경영 등 재테크 분야 도서가 1980년 교보문고 개점 후 처음으로 점유율 1위(8.5%)에 오른 데서도 꿈꾸기 열정이 읽힌다.

미래는 꿈꾸는 사람의 것이다. 기존 미술에 대한 혁명적 재검토가 이뤄졌던 격동의 19세기 말,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미학을 추구한 루소가 그 진리를 입증한다. 올해 국내 서점가에 차곡차곡 쌓인 국민의 꿈 역시 코로나 한파를 헤쳐갈 유력한 미래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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