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참여연대와 부산경실련이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가까이는 촛불집회부터 공직자 부동산투기센터 운영까지 권력과 자본 감시의 선두에는 늘 그들이 있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자양분 삼아 태동한 부산참여연대는 ‘민주 대 독재’의 이분법을 넘어서 자치와 분권이라는 어젠다를 던졌다. ‘워치독(watchdog)’ 역할은 그들의 정체성. 엘시티 특혜 의혹을 가장 끈질기게 파헤친 학자가 부산참여연대 도시위원장이던 고(故) 윤일성 부산대 교수다. 고인은 생전 “엘시티가 공익사업인가. 엘시티는 과연 ‘4계절 체류형 관광단지’가 될까. 오히려 부자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경고했다. 5년 전 미포 앞바다에 재로 뿌려진 고인은 엘시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부산경실련은 부동산투기와 불로소득 차단을 기치로 출범했다. 지금은 ▷도시재생과 아파트 공동체 운동 ▷예산감시와 납세자 권리보호 ▷공명선거 실천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돌이켜보면 시민운동사는 곧 부산의 역사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해체 위기에 놓인 삼성차를 회생시킨 주역이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 주한미군 주둔지였던 캠프 하야리아를 부산시민공원으로 탈바꿈시킨 1등 공신도 2004년 출범한 ‘하야리아 범시민운동본부’다. 실제로 부산시는 캠프 하야리아 반환이 확정되자 16만여 평 중 6만여 평은 매각할 계획을 세웠다. 1995년에는 14만 평을 주거지로 묶는 도시계획 변경을 추진했다. 하마터면 부산시민공원은 ‘아파트 숲’이 될 뻔 했다!

2017년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영구정지(폐로)는 환경운동가들의 땀이 결실을 맺은 쾌거. 일제 강점기부터 바다와 강의 생태계를 단절시켰던 낙동강하굿둑 개방이나 온천천 복원도 마찬가지. 부산도서관·국회부산도서관·부산민주공원도 시민사회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와 국제신문이 앞장선 ‘국립부산과학관 유치 서명운동’에는 100만 명이 동참했다.

최근 별세하신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이 남긴 유산도 빼놓을 수 없다. 김 이사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대모이자 일본 법원이 최초로 위안부 배상 판결을 내린 1992년 ‘시모노세키(관부) 재판’을 이끈 주역. 2004년부터 15년 넘게 사재를 털어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운영했다.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던 고인의 마지막 소원은 일본 정부의 방해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시민운동의 전성기이던 1990년대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열악한 재정이다. 2002년 1월 부산경실련은 ‘집 없는 겨울’을 맞이할 위기에 놓였다. 새 건물주가 “방 빼”라고 최후통첩을 했기 때문. 옛 건물주는 부도난 상태라 전세보증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날 처지였다. 국제신문이 안타까운 사정을 보도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사무실 70평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독지가가 나타났다. 부산참여연대도 셀 수 없이 이사를 했다. 부산YMCA회관은 1998년 경매에 넘어가기도 했다.

교복 나눔운동으로 유명한 (사)희망을여는사람들도 시작은 미약했다. 기자가 2002년 찾아갔을 땐 책상 하나 놓을 정도의 공간과 상근활동가 한 명이 전부였다. 그때 만난 20대 자원봉사자는 ‘대물림되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어려운 청소년의 공부를 도와야 한다’는 공고를 보고 매주 소년소녀가장 집을 찾아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다. 부산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의 원조가 바로 희망을여는사람들이다.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정당이나 직능·이익단체가 다양하게 분화해 목소리를 내는 영향이 크다. SNS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알리고 풀뿌리모임을 조직할 수 있는 것도 원인. 그렇다고 NGO의 존재 이유가 쪼그라들지 않는다. 부산시가 버스중앙차로 확대에 앞서 1박 2일 토론회를 마련하거나 박형준 시장 공약인 어반루프(초고속 열차) 공론화에 나선 것도 시민사회의 견제가 작동했기 때문. 이제 우리는 첨예한 갈등을 푸는 열쇠로 가장 먼저 ‘숙의 민주주의’를 떠올린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은 아련하다. 최저임금을 받는 활동가들이 밤새워 ‘더 나은 부산’을 고민하는 모습을 볼 때는 ‘큰 빚을 지고 있다’는 미안함이 든다. 30년 전과 비슷한 후원자 수를 확인할 때는 더 그렇다. 부산참여연대는 오는 22일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부산경실련은 지난달 30일 후원행사를 열었다. 자신의 가치에 맞는 시민단체에 소액 후원은 어떨까. 재능기부도 좋다. “서울참여연대만 해도 사회복지분야 전문가 100여 명과 결합돼 있다. 부산은 그렇지 못하다. 전문가 그룹의 재능기부를 통한 참여가 절실하다.”(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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