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달리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동력을 만드는 엔진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브레이크를 꼽는다. 멈출 수 있는 장치나 대책이 없는 상태로 달린다면 그 끝은 보나 마나 사고다. 달리기 전에 먼저 설 줄 알아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고, 매사 이게 기본이어야 한다.

민첩할 뿐만 아니라 영리하기 짝이 없어 ‘불여우’라고도 불리는 붉은 여우는 기대수명이 고작 10년 정도다. 여우가 오래 살면 요술을 부리고 사람을 홀린다며 경계하는 말도 있지만, 실제 야생에서는 5년을 넘긴 개체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너무 오래 산다. 갖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목숨을 연장하려는 노력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야생에서 수사자의 기대수명도 고작 10년 정도다. 제아무리 용맹무쌍한 우두머리라도 늙기 마련이다. 언젠가 젊은 사자의 도전에 패한 수사자는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되면 홀로 떠돌다 쓸쓸히 죽어간다. 이게 자연의 섭리다.

1800년경 인간의 기대수명이 26년이었다고 하는데 2020년에는 73년으로 늘어났다. 머잖아 120세까지 살게 될 거라 나대지만 사람의 얼토당토않은 욕심이야 부려도 부려도 끝이 없다.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의 수명이 몇백 년 만에 곱으로 늘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의료기술로 죽어야 할 때를 연기하는 것뿐이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며칠 더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선현들께서는 천간과 지지로 육십갑자를 만들어 헤아리셨다. 그러니까 하늘이 허여하신 인간의 생물학적 온 시간을 60년으로 여기신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간 건강상 별 탈 없이 살아왔지만 예순 살을 넘기고 나니 몸의 변화를 느끼는 일이 잦다. 이제 내가 살아 하루하루 더 개기는 만큼 지구의 타산으로는 마이너스다. 손실인생이다. 미안하다. 지구에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 불편하고, 또 여태 살아온 철학대로 국민연금도 그다지 축내지 않는 시점에 휘잇휘 휘파람을 불며 떠났으면 한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과정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생물은 죽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이니 뭐니 떠드는데 사실은 들풀이나 나나 생명은 같은 무게다. 다만 언제 어떻게 작별하느냐가 지금 고민이다.

오늘날 의학의 문제 중 하나는 환자들이 제각각 다른데 처방되는 약은 모두 동일하다는 데에 있다. 주량도 저마다이지 않은가? 사람의 몸 특성이 다 다른데 굳이 평균을 정해 맞추려 한다. 내 몸은 내가 치유한다. 의사는 이 치유를 도울 뿐이다. 그런데 이 역할이 뒤바뀌어 혼란이다. 내 몸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평소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 잘 읽고 수그려야 한다. 나의 이성적 삶이 본성과 일치하도록 늘 조율해야 한다.

고구려 혹 고려 시대인가에 나이 들어 더는 기동이 어려워진 부모를 먼 곳에 버려두고 오던 고려장 풍습이 있었다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어려워도 나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이자 가족을 팽개친다는 것은 사람이길 포기하는 일 아닌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인지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무리의 늙은 개체가 홀로 떨어져서 죽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죽음이 임박한 개체를 내버려 두지 않고 임종 때까지 같이 다니면서 지켜주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면 모두 모여 장례를 치른다. 다니다가 혹 다른 코끼리의 사체를 발견해도 애도를 한다.

만약 고려장 터가 있었다면 내 생각으로는 그곳은 죽음을 맞이하는 신성한 장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도 내 몸을 스스로 추스르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떠나기 위한 신성한 곳으로 가서 죽음을 맞고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나서고 싶다. 코끼리가 아니라 사자처럼.

삶이란 잃어버리거나 얻는 것이 아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은 언제나 자연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세상을 망쳐왔다. 욕심은 모든 걸 끝장낼 것이다. 지나친 욕심은 그를 추하게 만들고 모든 걸 가져갈 것이다. 때가 되면 당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게 자연이다. 삶을 희극으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비극으로 막을 내릴 것인지는 어디에서 끊느냐에 달려있다.

전 생명그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