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서 이 세상을 산 햇수를 합친 것이 ‘나이’이다. 한자로는 연령(年齡)이라고 한다. 간혹 연세(年歲)니 춘추(春秋)니 하는 것은 어르신의 나이를 높이 일컫는 말이다. 아무튼 나이라 하면 그냥 나이, 만(滿) 나이, 한국식 나이, 서양식 나이 등이 있는데 서양식 나이가 바로 만 나이이고 한국식 나이가 그냥 나이인 것이다. 서양식 나이와 한국식 나이는 한 살 또는 두 살의 차이가 있다.

지금 행정적으로는 거의 서양식인 만 나이를 적용한다. 그러다 보니 보통 기업체에서도 정년을 만 나이로 계산한다. 그런데 필자는 양쪽을 비교하여 어느 쪽이 옳고 그르고 하는 것을 떠나 서양식 나이보다는 한국식 나이가 훨씬 인간적이고 철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양식은 엄마 뱃속에서 완전히 세상으로 나와야 만이 그때부터 사람으로 인정하여 나이를 환산하는 데 반해 한국식은 엄마 뱃속에 태아로 있는 약 열 달 동안도 사람으로 친다는 것이다. 태아에게도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또한 상속권까지 부여하는 것만 봐도 한국식이 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나이가 요동하고 춤을 추는 경우가 더러 있다. 호적이 잘못되었다, 행정착오다, 군대에 안 갈려고, 군대에 가려고, 집안 사정 때문에 부득이, 심지어는 일제 식민지 때 면서기의 무지나 착오 또는 실수로, 6·25 전쟁의 혼란 통에, 형과 동생 또는 삼촌과 조카가 혼동되어 등등 그 이유도 가지가지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여기서 웃지 못할, 아니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일들이 간혹 벌어진다. 혈기 왕성한 젊은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나이 다툼을, 70을 바라보거나 훌쩍 넘긴 사람끼리도 서로 나이가 많다고 싸우는 경우가 있다. 서로 안 지려고, 형님 하려고, 그 나이에 한 살이라도 어린 게 좋을 법한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필자가 60 넘게 살아오는 동안 이런 광경을 많이 보아 왔다. 젊은 사람끼리는 서로 형님하려고 친구 부인은 무조건 제수씨라 부르고, 친구에게 자기 부인은 무조건 형수라는 식이다.

우리 동양적 정서로는 보통 형님이 술도 사고 밥도 사고 책임도 더 져야 한다. 그런데 형님이라고 우기던 사람이 술값이나 밥값 계산할 때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거나 입을 닫고 조용해진다. 참 난해한 노릇이다. 형님 노릇 못 할 거면 아예 처음부터 큰소리를 치지 않았어야 했는데 자기가 형님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나서 돈 낼 때는 꼬리를 내리고 조용해지는 것은 좀 그렇다. 직장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에 이런 경우도 있다. 자기 원래 나이는 정년퇴직 연한이 지났는데 호적이 3년 늦게 되는 바람에 3년을 더 근무할 수 있으니 참 좋다. 옛날에는 호적 정리를 잘 못 한 부모님을 원망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주 고마운 일이라고.

‘지공’이라는 말이 있다. 만 65세 생일에 이르면 ‘지공’이 된다. 약관(弱冠)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 고희(古稀) 등의 개념을 생각하면 안 된다. 바로 ‘지하철 공짜’를 줄여서 ‘지공’이라고 한단다. 재미있고도 기발한 발상이다.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는 하루가 먼저라도 형님은 형님이고 따라서 형님 대접을 하라는 뜻이다. 또 ‘태어난 것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나이 더 먹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은근히 하는 꽤 철학적인 말이다. ‘나이 먹은 것이 무슨 벼슬이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결코 듣지 말아야 할 말이다. 나이 더 먹은 것 말고는 그렇게도 아랫사람들에게 어필할 것이 없단 말인가? 뭔가 내놓을 것이 없으면 아예 입을 닫는 것도 상책이다.

침묵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말을 아주 잘하거나 아예 말주변이라고는 숙맥인 사람이거나 간에 침묵은 나름대로 중요성과 권위를 가진다. 또한 침묵하는 동안 여러 필요한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에 준비할 여유를 가지게 되므로 심리적 안정도 취할 수 있다.

아무튼 사람의 나이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나무의 나이테가 나무의 뜻과는 상관없이 늘어나듯이 사람의 나이도 불가항력이다. 그러므로 나이 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면 오히려 즐겨야 한다. 세월의 흐름을 원망 말고 나이가 드는 것을 한탄하지 말자. 눈을 감고 이승을 하직할 때 웃으면서 평화롭게 갈 수 있도록 미련 미망 집착에서 벗어나 노후를 아름답게, 멋지게 살아가자. 장년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말이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루라도 젊어지기 위해서는 가급적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젊은이들과 자주 어울려야 한다고. 그런데 어울리더라도 젊은 그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면박을 받지 않으려면 꼭 지켜야 할 철칙이 있단다. 어떠한 경우라도 지갑은 자주 열고 그 대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입은 굳게 닫아야 한다. 나이 들어서 꼭 지켜야 하는 좌우명이다.

부산시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