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창에 ‘중고 피아노’라고 친다. ‘중고 피아노 사고팝니다’라고 쓴 업체 전화번호를 대여섯 개 따고 창을 닫는다. 전화를 건다. “집에 있는 중고 피아노를 팔려고 합니다”, “몇 년에 생산된 어느 회사 제품입니까?”, “??년 ??회사 제품입니다”고 말하자 보지도 않고 “십만 원 드리겠습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전화한 곳 모두 비슷한 대답이다. 내가 바랐던 대답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다. 그중에서 가격을 잘 쳐주겠다는 곳에 연락하고 기다린다.

팔고자 하는 피아노는 딸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중고임에도 고급이라 비싼 가격으로 산 것이다. 딸아이가 원하기도 했지만, 혹시나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없는 살림에 허리띠를 졸라 샀다. 그때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딸아이는 처음엔 열심히 치더니 세월이 갈수록 치는 횟수가 잦아들고 고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는 입시 준비로 아예 치지도 않았다.

피아노 위에는 작은 인형 몇 개와 오르골, 그리고 사진액자가 늘 올려져 있었다. 피아노는 딸아이가 옷을 갈아입고 입었던 옷가지를 올려두기도 하는 옷걸이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작은 방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큰 덩치의 피아노를 보면서 언젠가는 치워야지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정작 주인인 딸아이는 치우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여서 두고만 보았다.

가끔 딸아이한테 “저 피아노는 네가 시집갈 때는 꼭 가져가라”며 ‘꼭’에 힘을 주어 농담 섞인 말로 치웠으면 좋겠다는 압력을 넣기도 했다. 그래도 싫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으며 가져갈 마음이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만큼 딸아이에게는 정이든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러던 딸아이가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게 되자 몇 가지 옷을 사더니만 옷을 걸어둘 곳이 없다며 피아노를 치웠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전엔 아파트 이웃에서 피아노 치는 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아파트 아랫집 윗집에서 들려오는 층간 소음과는 달리 피아노 소리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왠지 곱고 섬세한 손에 드레스를 입은 마음씨 고운 여인이나 청순한 여학생일 것이라는 생각에 즐거움이 일었다. 연주를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은 내가 분별하지 못하니 상관이 없었다. 요즈음은 세상이 변해서 그런지 피아노 소리를 듣기 힘들다. 격세지감(隔世之感)마저 느껴진다.

초인종 소리가 이런저런 생각을 깨트린다. 피아노를 사러 온 모양이다. 중년의 아저씨 둘이 들어와 피아노를 찬찬히 살펴본다. 피아노는 울림통을 봐야 한다며 피아노를 앞으로 끌어내어 플래시 불빛을 비춰가며 살펴보더니 “이 피아노는 울림통이 깨어져 맑은소리를 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수리를 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 살 수 없다고 한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데 아저씨들이 한마디 더 보탠다. 요즘 아이들은 전자피아노를 쳐서 나무로 된 피아노는 수요가 없다고 하며 고쳐서 동남아로 수출을 한단다. 기름값 들여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려니 서운하다며 몇만 원 쳐 줄 테니 다시 팔라고 한다. 나는 이 상황에서 피아노를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이 사람들의 상술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잠깐의 고민 끝에 몇만 원만 올려주면 팔겠노라 하니 좋다고 하여 팔아버렸다.

그 당시에 백만 원도 더 준 피아노를 십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고 보니 어떤 아이러니가 성립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피아노를 치던 어린 딸도 커버리고 피아노도 팔려 가고 없다. 피아노가 빠져나간 휑한 자리 밑에는 먼지가 수북하고 무거운 피아노 바퀴에 밀려 찢어진 장판만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흘러간 세월에 마주한 쓸쓸함과 무거운 짐이었던 것을 치워버린 시원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묘한 기분이 한동안 나를 지배한다. 이 기분을 푸는 방법은 피아노 판 돈으로 친구랑 소주를 한잔하는 것뿐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