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언론)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하기 힘들다. 민주주의는, 식상하면서도 어렵고 중요한데, 거칠게 정의하면 주권자인 국민이,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사상 혹은 제도를 말한다.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려면 국민 대중의 의사를 반영하고 실현해야 한다. 수많은 대중의 의견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대중은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한다. 이 같은 기능을 하는 가상의 공간이 공론장이며, 미디어는 이 공론장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공론장 역할의 미디어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기능하지 못한다.

미디어와 선거는 어떤가.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현대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선거란 주권자인 국민의 권력을 위임할 대표자를 뽑는 행위다. 이때 모든 국민은 평등한 권력(투표권)을 행사한다. 선거가 없다면 민주주의 체제가 작동하기 힘들다. 그런데 국민 대중은 적합한 인물을 뽑기 위해선 충분하고도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 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게 미디어다. 미디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유권자인 대중은 적합한 인물을 선택할 수 없고 따라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미디어는 국가를 감시할 뿐만 아니라 억제력을 행사하며, 권력에 대해 국민을 대변한다. 미디어는 국민에게 정보를 주고 논쟁을 전개시키며, 논쟁의 결과 형성된 공적 합의를 여론 형식으로 정부에 전달한다. 즉, 미디어는 민주주의의 기능을 촉진하는 정보와 논쟁의 기구이다. 정부는 선거와 선거 사이에 이런 방식으로 국민에 의해 감시받는다. 이런 게 전통적인 자유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미디어의 민주적 역할이다.

하지만 현대 민주사회에서 미디어가 이처럼 긍정적인 역할을 하던 때는 진작 지났다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그 하나는 미디어를 이용한 선거캠페인(선거운동)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정치인들은 선거캠페인을 일종의 마케팅으로 간주한다. 선거캠프는 여론조사자, 광고기획자, 마케팅 및 PR 전문가를 동원해 유권자들에게 그들의 후보를 ‘판매’하려 한다. 이 같은 ‘이미지 선거’ 과정에서 후보의 능력이나 정책보다 이미지가 더 중시된다.

선거캠프는 여론조작도 서슴지 않는 프레임 전쟁에 골몰한다. 미디어는 이런 선거캠페인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적극적인 가담자가 되기 십상이다. 이를 ‘캠프 미디어’라 부르고 싶다.

미디어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기능 중 다른 하나는 지나친 상업화에 따른 결과다. 언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맥체스니는 ‘부자 미디어 가난한 민주주의’에서 오늘날 거대 미디어 기업이 공익성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상업성을 추구함에 따라 민주주의에 독이 된다고 지적했다.

대선전이 본격화했다. 미디어 선거 시대, 우리 언론의 맨 얼굴을 생생하게 본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고양하는,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공론장 모습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나친 정파성의 ‘캠프 미디어’ 행태에는 심각한 우려와 함께 눈살이 찌푸려진다.

한국의 거대 미디어들이 약속이나 한 듯 특정 캠프의 미디어 노릇에 열심이다. 일일이 사례를 열거할 필요조차 없다. 노엄 촘스키가 ‘여론조작-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에서 지적한 대로 이들은 특정 집단을 위해 봉사하고 선전하는 프로파간다(선전도구) 역할을 자랑스럽게 수행하는 모습이다.

미디어가 언론다워야 언론이고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 그것도 대통령 선거라면 공정과 균형을 갖춰야 언론이다. 특정 정파의 ‘캠프 언론’에서 최소한의 공정과 균형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저해하는 민주주의의 독이다.

곪으면 터지는 법이다. 오랜 독재체제의 억압에서 민중의 민주화운동이 봇물 터지듯 일어났듯 민주주의를 좀먹는 ‘캠프 언론’의 전횡을 깨어있는 민중들이 언제까지 가만두지는 않을 성싶다. ‘민중의 미디어 개혁 운동’이란 마그마가 언제 분출할지 누가 알겠는가.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