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통령을 뽑기 위한 후보들 간의 경쟁이 많은 화제를 낳으며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우리나라만큼이나 높은 나라가 또 있나 싶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니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동안 정치가 국민을 얼마나 힘들게 하였으면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에 관해서는 그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한다. 사람에겐 공기가 그렇고, 물고기엔 물의 존재가 그렇다. 공기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물의 상태를 고민한다는 것은 이미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치가 국민을 위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정치를 잘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국민이 대통령이나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치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지금 여야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모두 법조인이기는 하나 그들이 걸어 온 길은 완전히 다르다. 한 후보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를 나와 검찰총장까지 했고, 다른 후보는 어린 나이에 공장을 다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법조인이 되었다. 자수성가한 셈이다. 이것을 보면서 만약 지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면 공장을 다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변호사가 되고 대통령 후보까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노력이 엄청났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고 지금의 사회구조상 그게 가능하겠는가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법조인 양성시스템으로 좁혀 보자면 돈도 없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법조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사법시험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바로 이점을 지적한 것일 테다. 개인적인 문제든, 환경적인 문제든 언제나 마음만 먹고 노력한다면 법조인이 될 기회가 있는가 하는 점 말이다.

로스쿨 제도가 생겼을 때부터 사법시험 존치는 계속 주장돼왔지만 로스쿨 제도가 정착된 지금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로스쿨 제도를 폐지하고 사법시험을 부활시키자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대학 학력을 가져야 하고 대학을 다녔다고 하더라도 대학시절 로스쿨에 뜻이 없었거나, 사회에 나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로스쿨에 입학하고 싶어졌거나, 형편상 대학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등의 사정이 있어 성적이 썩 좋지 않았던 사람이 법조인이 되고 싶어 한다면 그는 다시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대학 성적이 로스쿨 입학에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학 다닐 때 왜 좋은 성적을 유지하지 않았느냐고 그 사람만을 탓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사람은 실수도 하고, 한때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고,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이 때에 맞게 그 과정을 충실하게 통과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개인만을 탓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보다 더한 혜택을 줄 수는 없겠지만 도전 자체의 문을 닫아두어서는 안 된다.

사회는 언제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패자부활전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는 계층이 고착화되고 극복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게 된다. 자신의 노력만 있으면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사회이어야지 신분제 사회처럼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제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게 신분제 사회였던 이전과 현대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래서 대학시절 여러 문제로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나중에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법시험을 부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로스쿨 제도의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원의 일정비율(예컨대 10%라든가) 정도는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현행 대학입학시험에서도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전혀 반영하지 않는 전형이 있어 마음먹은 때부터 열심히 해도 충분히 대학에 입학할 수 있듯이, 로스쿨에도 대학성적을 대체할 제도가 있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는 경직되고 희망도 적다. 대학입시철을 맞아 법조인 출신인 여야 후보를 보니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